주일설교영상
노창영 목사 -
마가복음의 성탄
본문 말씀 : 마가복음 1:1-2
2021.12.19설교
제목: 마가복음의 성탄 본문: 마가복음 1:1-2 설교자: 노창영목사
서론// 작년 성탄절기간에는 마태복음에 나타난 성탄에 대하여 족보, 동정녀잉태, 동방박사이야기를 설교하였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에 나타난 성탄에 대해 설교하겠습니다. 이어서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나타난 성탄에 대해서도 차례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Ⅰ. 먼저, 마가복음서에 나타난 성탄기록의 독특성을 살펴보겠습니다
A. 마가복음의 성탄은 일하러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합니다
마가복음의 성탄기록의 독특성은 한 줄로 축약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 단순한 이 한 줄에는 예수님의 사역시작과 더불어 예수님의 성탄이 농축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기록은 스토리텔링의 기록입니다. 다윗왕의 혈통으로 오신 메시야의 탄생, 마리아의 동정녀 잉태와 출산, 그리고 동방박사들의 이야기 등의 모든 내용들이 예수님탄생의 스토리를 구성합니다. 누가복음의 성탄기록도 스토리텔링으로 구성됩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통해 세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먼저 이 땅에 온 이야기,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을 따라 요셉이 고향 베들레헴에서 호적 등록하는 이야기, 예수님의 구유탄생, 천사들과 목자들의 이야기, 시므온과 안나가 주님을 만난 이야기 등,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탄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본문은 어떤 탄생의 스토리도 없이 단순한 한 줄의 복음의 메시지인「복음의 시작이라」는 말씀안에 성탄을 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행동하는 복음으로 1장부터 16장,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행적을 빽빽하게 기록합니다. 마가복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곧, 즉시, 즉각적으로(At once, Immediately)’라는 말입니다. 숨막히게 연결되는 말씀과 행동의 에피소드들이 십자가의 죽음까지 연결됩니다. 다른 말로 마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탄생 자체가 복음이었고, 하나님의 일이었고, 하나님의 미션이었습니다. 마가복음1:1은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의 목적이 복음의 시작이요 하나님의 일임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탄생하시자마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마가복음1:1의 단순한 메시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일하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 휴가차 오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엄청난 인류구원의 책무를 홀로 어깨에 짊어 지시고 일을 하러 오셨습니다. 특별히 그의 공생애 3년 동안에는 쉬실 틈도 없이 일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B. 4복음서의 특색들과 마가복음서의 독특성을 살펴봅시다
미국의 뉴저지에는 프리스톤 대학교가 있습니다. 그 대학교 채플실 입구 대문 위에는 네 개의 생물 형상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이 네 개의 생물의 조각상은 각각 사자얼굴, 황소얼굴, 인자얼굴, 독수리을 하고 있습니다(에스겔 1장, 요한계시록 4장). 이 각각의 생물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한 사역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사복음서는 이 네 생물의 특징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4가지 모습을 나타냅니다.
1. 먼저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은 사자의 얼굴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사자복음(Lion Gospel)이라고 합니다. 사자는 왕을 상징하며 그리스도는 이 땅에 사자 같은 왕으로 오셨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주의 대왕으로 이 땅에 강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는 다윗왕의 혈통에서 나신 왕이십니다. 인류의 대표사절단이었던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와서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황금, 유향, 몰약을 바쳐 왕께 드리는 최고의 예물로 그들의 예를 다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 올라가셔서 왕의 말씀을 선언하셨고, 왕의 귀환을 예언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왕의 대위임령을 통하여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을 제자들에게 위탁하십니다. 마태복음의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2.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소의 얼굴을 나타내며, 이 복음서를 황소의 복음(Ox Gosple)이라고 합니다.
황소는 죽을 때까지 인간을 위해 일을 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의 고깃덩어리를 인간에게 모두 주며 생을 마감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황소처럼 이 땅에 일을 하러 오셨습니다. 쉴 틈 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셨고, 마침내는 황소가 자기 살을 인간에게 주듯 자신의 몸을 모든 인류의 대속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3. 누가복음은 인자 복음(The Son of Man Gospel, 人子福音, 사람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완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성(Humanity)을 가지신 완벽한 인간(Vere Homo, True Man)이시며,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가까이 다가오시는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메시지는 가장 먼저 비천한 목동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와 같은 늙은 선지자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 재판관에게 간절히 구하는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 그리고 세리장 삭개오 이야기는 전부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기록입니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구원받은 강도의 자세한 이야기와 엠마오로 가는 길에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 위로받는 두 제자의 이야기도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의 마음과 아픔을 그대로 체휼하시고 도와주시며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자되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4.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은 독수리복음(Eagle Gospel)이라고 말합니다.
사자나 황소나 사람은 땅에 있지만 독수리는 땅에 있지 않고 하늘 높은 곳을 날아다닙니다. 마태, 마가, 누가는 예수님의 생애를 비슷한 시각으로 보았다하여 공관복음(共觀福音, Synoptic Gospel)이라고 말하며 많은 이야기가 중복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와는 다른 독특한 시각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하나님되심과 신성(Deity)을 강조합니다. 이에 요한복음을 제4복음서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은 위대하고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Ⅱ. 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호칭을 상고해보겠습니다(1:1a)
오늘의 우리의 관심은 마가복음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의 이야기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짧은 말씀속에 함축하여 선포합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A.「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먼저 본문1:1의 첫 번째 분절인「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상고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벽한 사람이시지만, 완벽한 하나님(Vere Deus, True God)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흠이 없는 완벽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인생의 관점이 달라집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은 기독교 신앙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역사 속에 지나간 많은 이단과 분파들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로 이해하였습니다. 고대의 영지주의와 현대의 여호와의 증인 같은 이단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고 위대한 선지자의 한 사람, 천사 중에 가장 높은 천사, 혹은 피조물중에 가장 높은 고등피조물로 보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거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영성과 인격과 부활과 영생의 구원자 되심을 깎아 내립니다. 이것은 분명히 사단이 공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결코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신성에 대한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빼놓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가치는 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스스로 입증하셨습니다(롬1:3-4).
빌2:5-11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의 위대한 고백이 있습니다.「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사람으로 성육신하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를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 있는 모든 자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고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타종교의 신들은 모두 사람입니다. 부처도 죽었고, 인도에 무덤이 있으며, 사리들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공자의 무덤도 중국의 산동에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무덤이 있고, 마호메트도 무덤과 유골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이 없으신 부활과 영생의 하나님이십니다. 점과 흠이 있는 인간은 인간을 절대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B.「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두 번째 분절은「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문에는「예수 그리스도」라는 위대한 두 이름이 같이 갑니다. 교파 이름 중에 기독교라는 이름이 붙은 곳과 예수라는 이름을 붙인 곳이 있으나 이 표현이 특별히 다른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와 예수교가 무엇이 다릅니까? 예수교는 말 그대로 예수님(Jesus)을 믿는 교파이고, 기독교는 그리스도(Christ)를 뜻하는「기독(基督)」에서 온 한문의 표현입니다. 둘 다 같은 신앙에 뿌리를 둔 교파이지만 그 의미는 다릅니다.「예수」와「그리스도」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예수」라는 이름
「예수」라는 이름은 구약에 많이 나옵니다. 구약의 호세아,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식 발음이 조금씩 달라도 「예수」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구원할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에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요셉에게 수태고지를 하면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고 말씀합니다. 예수라는 이름 자체의 메시지는 우리를 죄로부터 건져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딜레마는 죄와 사망입니다. 죄의 삯으로 사망이 옵니다. 죄에서 건져내는 것이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입니다. 코로나19 팬테믹 이후로 델타변이, 오미크론변이까지 나왔고 또 무엇이 나올지 모릅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는 60세 이상 되신 분들에게는 치사율이 높고, 젊은이들에게는 전염이 잘 됩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지난 10월 1일부로 코로나19로 70만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1918-1919년(1차세계대전기간)에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미국인의 숫자인 69만 5천명을 이미 넘어섰습니다. 무서운 현상입니다. 왜 전염병, 암, 치매, 뇌졸중, 심장마비가 무섭습니까? 바로 죽음 때문입니다. 마귀는 죽음으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게 하여 죽음에 종노릇하게 하고 우리를 협박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이유는 이 같은 마귀의 악을 멸하시고 죄 때문에 죽어가는 우리를 사망에서 해방시키시고, 죽음의 묶여서 무서워 종노릇하는 인간들을 자유케 하시려함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그 이름안에 구원의 힘이 있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하나님의 선택된 선지자 엘리야가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갈멜산에 제물을 가져다놓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 제물을 태우는 신이 진짜 하나님임을 증거하는 대결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제단을 쌓고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며, 바알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응답 없는 바알신 앞에서 그들은 더욱 날뛰며 심지어 자기 몸을 흉기로 자해하여 피까지 흘렸지만 그들의 신 바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바알은 죽은 신,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엘리야가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제단을 쌓는 일에 더하여 단 주위에 도랑을 파서 물까지 부었습니다. 그가 저녁소제 드릴 때 하나님께 간구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다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완전히 태움으로 엘리야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바알의 이름은 무력합니다. 마호메트, 공자, 크리슈나, 부처, 알라의 이름은 힘이 없습니다. 죽은 자의 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만이 죄와 사망을 깨뜨리는 능력의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2.「그리스도」라는 이름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크리스투스(Χριστοῦς)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메시야(Messiah)이며 그 의미는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Anointed One)」입니다. 성경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직책은 왕, 제사장, 선지자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는 의미로 기름부음을 통하여 왕의 직분과 제사장의 직분과 선지자 직분을 감당하게 됩니다.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압도적으로 지배하셨고 하나님의 신이 그 사람과 함께한다는 의미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은 기름부음이라는 말과 그 의미가 동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 성령을 가진 사람들입니다(롬8:9, 8:14, 요일 4:2, 고전 12:3).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 안에 임재 하셔서 우리는 신령한 사람이 됩니다.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성령님이 계시지만 동시에 그에 대척되는 악령(Unclean Spirit, 더러운 영)도 있습니다. 악령은 사단의 졸개들, 어둠의 세력들입니다. 이같이 정결치 못한 영과 접속한 사람은 무당, 박수, 신접자, 술사들이며 모세5경에는 이 같은 자들을 돌로 쳐죽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세상 속에서 악한 영적 세력을 전염시키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을 받은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제가 신학교시절에 2년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시골 교회의 목사님이셨는데 그가 초등학교 때 그가 살던 동네에서 벌어진 무당 굿판을 구경하러 갔다고 합니다. 춤을 추면서 무당이 신의 강림을 기대하며 친지신명에게 빕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와서 구경하는데 한참동안 신이 내려오지 않았답니다. 무당들은 악신의 힘으로 작두도 타고 해야 하는데 그 날따라 여러 차례 신내림을 시도해도 신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무당이 굿판을 구경 온 사람들에게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예수믿는 사람 있으면 나가달라고 합니다. 예수쟁이 때문에 신내림이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손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무당은 다시 신접행위를 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때 어떤 사람 하나가 여기 목사님의 아들이 있다고 그 아이를 가리켰습니다. 무당은 “너 때문에 신이 안오니 제발 가달라”고 말했고 그가 자리를 떠나니 그제서야 신이 내렸다고 합니다. 성령과 악령은 서로 대척됩니다. 믿는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영, 하나님의 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죄가 용서되고, 용서된 우리의 심령에「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이 채워지면서 우리는 거듭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와 「그리스도」,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 되셨음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Ⅲ.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시작입니다(1:1b-3)
A.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福音)이십니다
세 번째 분절은 「복음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복음은 유앙겔리온(εὐαγγελίον)입니다. 유앙겔리온은 좋은(유, Well)과 천사, 즉 하나님의 사자(앙겔로스, Angel)의 합성어입니다. 두 말을 합하여 해석해보면 복음은 하나님의 사자가 전달한 기쁨의 소식, 혹은 천사보다 더 나은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천사입니다. 그러나 천사보다 더 위에 계신 분이 계신데 그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히브리서는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모든 것들과 비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보다 더 위대하신 분(히브리서 1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세보다 더 위대하신 분(히브리서 3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수아보다 더 위대하신 분(히브리서 4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보다 더 위대하신 분(히브리서 5-7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전보다 더 크신 분(히브리서 8장)으로 표현합니다. 비교급인「그 보다 더(more then, better then)」의 의미로 계속 기록됩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시종을 드는 영적 존재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사환으로 충성스러운 종이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아들이십니다. 여호수아는 이 땅의 안식과 평정을 주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적 평정과 하늘의 평강, 안식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 땅의 제사장은 점과 흠이 많아 먼저 자기를 위해 속죄하고 그 다음에 백성을 위해 속제죄를 드려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는 하나님으로 완벽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구약은 성전에 목숨을 걸지만, 그 성전보다 크신 분, 성전의 머리가 되시는 성전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무엇과 비교 할 수 없는 최고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향하여 모든 조명이 비춥니다. 설교하는 설교자에게 강단에서 강한 조명이 스팟라이트(Spot-Light) 되는 것처럼 모든 성경의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조명을 합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2절)는 이사야서의 예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세례 요한을 예비하셔서 그 길을 준비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세례 요한은 복음서의 주연(Leading Actor)이 아니고, 조연(Supporting Actor), 엑스트라(Extra), 까메오(Cameo)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인공(Leading Actor)이 되시고 높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며 나는 사라지고 그 분을 위해서 쇠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의 예언으로 대표되는 모든 구약성경의 이야기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집중 조명합니다. 또한 신약의 복음서의 요셉과 마리아, 별, 헤롯왕, 동방박사들, 사가랴, 엘리사벳, 가브리엘, 가이사 아우구스도, 여관, 구유, 천사, 목자, 시므온, 안나 등의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 조명하는 것들입니다. 성경의 모든 존재들이 사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스팟라이트(Spot-Light)를 비추고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올 때 역사가 시작됩니다.
B.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역사를 바꿉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복음을 가지고 오심으로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시작」이란 말은 아르케(ἀρχὴ, The beginning)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으로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심을 알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으로 오실 때 우리 삶과 가정이 새롭게 시작되고, 교회와 민족과 국가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삶에 복음으로 오십니다. 구약의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절망과 죽음의 홍해바다를 내리치고 바다가 갈라집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불평으로 불뱀에 물려 죽게 된 백성들이 모세가 장대위에 높이 매달은 불뱀을 본 순간 살게되는 역사가 바로 복음입니다. 여리고 사람들이 좋은 땅에 살고 있었으나 물의 근원이 썩어서 낙태가 되고 열매가 떨어질 때, 하나님의 종 엘리사가 물근원에 소금을 뿌렸더니 물이 고쳐져서 그 땅이 생명의 땅, 비옥한 땅으로 변화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열두 살 된 여자아이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달리다 굼」 (소녀야 일어나라)하시니 그 소녀가 살아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나인성 과부의 독자 아들 젊은 청년이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니 그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베다니의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나사로야 나오라」하시니 나사로가 돌무덤에서 살아나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에「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강도를 향하여 구원을 약속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복음의 역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실 때 불가능이 가능으로, 죽음이 생명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바뀝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가정 속에, 그리고 삶의 자리에 예수님께서 들어오실 때 복음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성령으로 믿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복음이 들어올 때 새생명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설교요약: 강퐁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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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4 | 사십주강해(V):십계명(2):제3·4계명 | 2025-02-09 | 출애굽기 20:7-11 | 노창영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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