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노창영 목사 -
바울의 교회론(Ⅰ):고린도서신에서
본문 말씀 : 고린도전서 1:1-3
주일설교전문
바울의 교회론(Ⅰ): 고린도서신에서
본문: 고린도전서 1:1-3
2022. 10. 9(일)
설교자: 노창영목사/개봉교회
서론// 다음 주일은 교회창립48주년 기념주일입니다. 교회창립주일을 맞아 몇 주간 동안 사도 바울의 교회론에 대해서 설교하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성경 13권의 저자로서 기독교 신학의 체계를 집대성한 인물입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 쓴 서신서들을 보면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교회론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고린도서에 나타난 교회론에 대해서 설교하려고 합니다. 바른 교회에 대한 신앙을 가져야 우리의 믿음이 바로 서고 또 성경적 교회 시각을 가져야 우리의 교회생활이 건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 고린도전서1:1-3의 말씀은 고린도교회에 주신 말씀일 뿐만 아니라 현재 이 시대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참된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방향을 정립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 1년6개월간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여 세운 교회입니다(행18:1-17). 이때 고린도의 유대교 회당장이었던 소스데네(Sosthenes)가 바울을 통해 회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스데네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송사할 때 바울대신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 때에 에베소에 함께 간 것으로 보이며 그 곳에서 사도 바울과 함께 이 편지를 보냅니다(1:1). 그렇지만,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사람은 바울입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A.D.55년경 에베소에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특히 본문의 2절을 중심으로 바른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은혜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Ⅰ.「고린도교회」에 대하여 (1:2 / 1분절)
「고린도에 있는」이라는 1분절의 말씀대로 고린도에 있는 교회는 하나였습니다. 고린도중앙교회, 고린도제일교회, 제2, 제3교회는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본문을 가지고 각 지역마다 교회는 하나만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기독교회는 종교개혁의 후예들입니다. 그 후예들 중에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교회 등, 수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교리나 조직이 조금씩 다르지만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지역에 다른 교파나 교단의 교회가 있다 할지라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이름도 중요합니다. 본문의 기록은「고린도에 있는 교회」입니다. 가급적이면 교회 이름은 지역명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역명이 아닌 교회이름을 쓰면 곤란한 일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의 교회인데 사랑이 없거나, 부흥하는 교회인데 10년, 20년이 지나도 그대로이며, 행복한 교회인데 성도들의 얼굴을 보면 행복하지 않고, 든든한 교회인데 자주 갈라진다면 교회 이름값을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개봉교회는 조금 사랑이 없어도, 부흥 안되어도, 든든치 못해도, 행복함이 조금 모자라도 괜찮습니다.「개봉교회」니까요.
오늘 날의 초대형교회(megachurch)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동수단이 제한된 성경시대와 달리 오늘날의 교회들의 모습은 각종 통신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셔틀버스와 각종 프로그램으로 지역교회를 뛰어 넘습니다. 지나치게 비대화되고 산업화되다 보니 건강하지 못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지역교회였습니다. 교회는 지역교회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개봉교회처럼 지역교회가 많아져야 교회가 건강해지고, 교제와 봉사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Ⅱ. 「하나님의 교회」에 대하여 (1:2 / 2분절)
두 번째 분절인「하나님의 교회’(the church of God, ἐν ἐκκλησίᾳ τοῦ Θεοῦ)」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A. 하나님께서 교회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란 하나님께 속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주인이 되시고 머리가 되시며 왕이 되시고 통치하시는 최고의 절대자이시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주인행세를 하거나 주인의 자리에 끼어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속하신 백성들이 자신만을 왕으로 경배하며 영광돌리기를 원하시는 마음이 있으십니다. 그 영광을 누구에게도 빼앗기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해서 광야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계약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부터 모세, 여호수아, 사사들 같은 지도자를 보내십니다. 그러나 이들이 왕은 아니었습니다. 왕은 세습될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세금받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국가를 운영해나가는 권세자들입니다. 그러나 모세, 여호수아, 사사들은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때 그때마다 세우신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사사로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에게도 왕을 달라고 합니다(삼상8장). 사무엘은 이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왕의 제도를 허락하십니다. 삼상12장에서는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그들이 왕을 구한 일이 큰 범죄라고 하였고 그 증거로 우뢰와 비가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왕을 허락하라고 하셨지만 이것은 본래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통치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공동체, 교회의 원형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구약의 이스라엘을 광야교회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약의 교회의 보여주는 교회의 원형이고, 하나님께서는 신정정치(Theocracy)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교회는 이스라엘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외에는 어떤 존재도 왕이 될 수 없습니다. 머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B. 인간이 교회의 주인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또한「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의 의미는 인간이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타종교와 이단의 모습(타락한 인본주의적 종교체계)
인간이 주인된 대표적인 종교가 바로 로마천주교회입니다. 교황을 중심으로 추기경, 대주교, 주교, 사제, 부제 등 완벽한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있는 로마가톨릭교회는 인본주의적인 인간중심의 교회입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교회를 지배합니다. 영국 성공회도 수장이 국왕입니다. 정치적인 군주가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건강하지 못합니다. 동방정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 그리스, 아르메니아, 에티오피아, 이집트 등 여러 나라에 동방정교회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 최고가 이스탄불에 있는 파파총대입니다. 그는 로마가톨릭의 교황 같은 존재입니다. 또한 문선명(통일교), 박태선(천무교), 이만희(신천지), 정명석(JMS) 같은 이단들을 보면 교주가 신이요, 왕입니다. 인간중심의 종교집단입니다.
2.기독교회의 모습(타락한 인본주의적 기독교회)
종교개혁 이후에 생겨난 기독교회(개신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거나 초창기에 목회하여 부흥시킨 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을 보면 실력도 안되는 자녀에게 교회를 세습을 시키거나, 은퇴해도 계속 교회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들은 교회의 주인행세를 합니다. 아무리 크고 훌륭한 교회라도 목회자가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조금 작은 교회들을 보면 창립한 장로님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의 큰 형님(빅 브라더)이 되어서 목사님을 쫓아내고 성도들을 선동합니다. 어떤 침례교회에는 7명의 집사님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별명이 7상시(삼국지의 십상시를 본뜸)입니다. 일곱 집사님들이 모든 것을 움직입니다. 목사님을 쫓아내고 교인들을 좌지우지합니다. 어떤 교회에 가면 여전도회에서 일할 때마다 큰 대왕대비마마 같은 할머니 권사님께 허락을 일일이 받아야 합니다.
이런 예들은 아주 건강하지 못한 교회들의 모습입니다. 교회에는 담임목사와 당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담임목사도 당회도 교회를 좌지우지하거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는 지상교회의 초소한의 섬김의 조직과 공동체일 뿐입니다. 그리고 회중도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공동의회 위에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 계십니다. 어떤 회의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큰 일 앞에서 기도를 많이 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교회내의 어떤 집단이라도 인간이 주인된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하나님의 교회」라는 바른 신학만 가져도 교회가 살아납니다. 우리 교회는 사람이 주인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인되시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Ⅲ.「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 대하여 (1:2 / 3분절)
A. 고린도 교회의 상황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사역하였던 고린도는 B.C.46년에 로마의 식민지가 됩니다. 고린도는 아가야(Acaiah) 주의 수도로 바울 당시 인구는 60만명으로 추정합니다. 무역과 교통, 해양산업, 상업의 중심지로 그릇공예와 금속공예가 최고로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음악학교, 언어학교, 과학학교, 철학대학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그리스의 아프로디테(로마의 Venus신)라는 여신을 섬겼습니다. 아프로디테는 사랑과 미의 여신이었고 신전에 있는 여자사제들은 돈을 받고 음행을 하는 매춘부들이었습니다. 고대의 어느 작가는 고린도를 가리켜 “뱃사람들의 낙원이요, 술주정뱅이의 천국이요, 정숙한 여인들의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우상숭배, 음행, 교만, 타락, 술취함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고린도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1년6개월간 있으면서 교회를 세웠는데, 세속문화가 교회에 흘러 들어와서 교인들 사이에 분란, 음란, 우상숭배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같은 것들을 바로 잡으려고 고린도전후서를 쓰게 됩니다.
B. 거룩한 성도의 가치
세 번째 분절인「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바로 세속속에서 정결을 지켜가는 교회의 거룩성을 말씀합니다. 세속문화에 둘러싸인 고린도교회를 향해 바울은 교회의 구별성, 거룩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된 성도들의 공동체라고 말씀합니다. 교회의 정체성은 거룩함(Holiness)입니다.
일반 세상의 회사라든가 기업의 경영은 크기를 봅니다. 매출액, 직원숫자, 당기순이익이 얼마인지를 계산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얼마나 많이 모이느냐, 예산이 얼마냐, 예배당이 얼마나 크냐, 얼마나 조직이 잘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회사, 기업경영의 마인드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나서를 보면「큰 성읍 니느웨」라고 하고, 요한계시록에서는「큰 성 바벨론」이라고 부르면서 국가나 도시를 크다 작다는 물량적 단위로 말씀하지만, 성경은 교회는 크다 작다는 기준으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정체성은 외적인 크기, 모양이 아니라 거룩함에 있습니다.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거룩함이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날이 더해갈수록 삶이 정화되고 아름다워지고 깨끗해지고 온전케 되어가는 거룩한 교회의 정체성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어느 한국선교사가 네팔에 선교사로 갔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그 선교사가 길을 가는데 어떤 네팔사람이 그 선교사에게 한국말로 온갖 욕을 하면서 돌을 던졌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그 네팔인은 한국에서 외국인노동자로 3년간 있었는데, 악덕 기업주를 만나서 그가 얼마나 갑질과 욕을 했는지 마음에 원한을 품고 있다가 네팔에서 한국사람인 선교사를 보자마자 돌을 던지면서 온갖 욕을 한 것입니다. 그 악덕 기업주는 한국을 잘못 대표한 사람입니다. 한국인 하나가 잘못하면 대한민국 모두가 비난을 받습니다. 한국인 개개인은 다른 나라에서 한국의 국가대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잘못된 것을 보면 교회를 비난합니다. 교인하나가 잘못해서 교회전체가 비난을 받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여러분도 같이 교회를 비난하십니까? 그러나 그 비난은 교회의 구성원인 나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같이 비난하는 사람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된 성도들, 공동체는 다른 교회성도의 과실과 죄악도 같이 짊어지고 아파하며 삶의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자신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Ⅳ.「각처에서 우리의 주(저희와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 대하여 (1:2 / 4분절)
A. 편협한 교단의 세계
죄송하지만 어떤 교단의 교회를 보면 너무 폐쇄적이고 배타적이고 보수적으로 편협해서 자기 교단의 선교사만 인정하고 돕습니다. 자기 교단의 선교사만 바른 복음을 가진 진정한 선교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편견이고 고집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돕고 있는 해외선교사님 가정은 38곳이며, 국내선교지는 60여 곳으로, 합하여 약 100여곳이 됩니다. 물론 그중에 3/4은 우리 교단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장로교 합동, 장로교 합신, 감리교, 성결교, 나사렛교단 등을 초교파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주주의, 세계주의입니다. 우리 교단만 옳다는 생각은 잘못된 착각입니다. 나만 옳다는 좁은 편견에 빠지면 안됩니다.
B. 우주적인 마음의 소유
4분절의「각처에서(in every place or everywhere, ἐν πᾶσιν τόπῳ)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은 성도들의 우주주의, 세계주의적 마음을 격려합니다. 한 하나님, 한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는 그리스도인라면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서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장로교인이니까 죽을 때까지 장로교인이요, 감리교회 교인이니까 죽을 때까지 감리교인이라고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성장하면서 영향을 받은 교단에서 신앙생활 하시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교회는 각처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배타적이고, 편협하고, 교만하면 안됩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의 센터이고, 우리 교회가 제일 좋은 교회라는 그런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Ⅴ.「‧‧‧부르심을 입은 자들,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 대하여 (1:2)
1:2에 보면 중요한 단어가 두 차례 나옵니다. 바로 “자(者)들”입니다.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입니다. 여기서「자(者)들」은 사람입니다. 교회는 사람입니다. 인격입니다. 생명의 공동체, 인격의 공동체, 몸의 유기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흐르고 있는 살과 피요, 몸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고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빌딩이 아닙니다. 조직이 아닙니다. 군대가 아닙니다. 회사가 아닙니다. 음악감상실도 아닙니다. 동호인 연합회나 문화교실이나 노래방이나 취미생활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성도들, 그들이 교회입니다. 우리들 자신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생명의 유기체임을 알아야 합니다.
결론//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한 교회의 모습을 마음에 담고 우리 개봉교회가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교회의 모습을 따라가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설교정리: 이춘우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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