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2022-04-10 10:49:57

노창영 목사
십자가의 신학:갈라디아서의 4개의 십자가

본문 말씀 : 갈라디아서 2:20,3:1,5:24,6:14,6:17

2022.4.10주일예배설교

제목: 십자가의 신학:갈라디아서의 4개의 십자가 본문: 갈라디아서 2:20, 3:1, 5:24, 6:14, 6:17 설교자: 노창영목사

서론//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던 날에 백성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어 예수님의 입성을 축하하였던 일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종려주일을 중심으로 고난주간이 시작되며 다음 주일은 부활주일입니다. 오늘은 사도 바울의십자가의 신학에 대하여, 그리고 다음 주일에는 사도 바울의부활의 신학에 대하여, 설교하고자 합니다.

영국 북아일랜드에는 벨파스트(Belfast)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벨파스트 근교에 가면 순교자기념교회(Martyrs Memorial church)가 있는데 전통장로교회입니다. 그 교회 전면에는We Preach Christ Crucified(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고전1:23)라는 성경말씀이 쓰여 있는데 우리 교회 예배당의 전면에도 같은 말씀을 붙여 놓았습니다. 바울이 설교하고 외쳤던 신학적 주제는 언제나십자가였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붙들었고 십자가를 선포하였고 십자가를 통해서 그의 신앙과 신학을 전개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쓴 13권의 책들 중에 초창기 서신으로 그는 여기서 죄와 율법과 육신 등의 많은 문제와 씨름하며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십자가를 삶의 해결책으로 제시합니다. 갈라디아서 전() 6장 중에 4가지 종류의 십자가가 나옵니다. 십자가의 종류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메시지와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같은 십자가지만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체험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오늘의 말씀을 중심으로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4개의 십자가에 대해서 설교하겠습니다.

. 먼저,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가 있습니다(3:1)

먼저 바울은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를 말씀합니다.

A.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보여진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만천하에 공표된 것입니다. 숨겨진 것이 아니라 알려지고 밝히 드러난 이 십자가는 모두가 쳐다볼 수 있도록 높은 곳에 달려 있습니다.

민수기 21장에는 불평과 원망 때문에 불뱀에 물려 죽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불뱀에 물려 죽게 되자 그들은 모세에게 살려달라고 요청하였고,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는 불뱀에 물려 죽게 된 사람들에게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놋뱀을 만들어 장대(Pole)에 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장대에 높이 달려진 놋뱀을 보는 자들이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3-15에서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장대에 매달아 든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놋뱀을 든 장대와 예수께서 매달려 높이 들려지신 십자가는 둘 다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위로 올려 들려진 나무의 표식입니다. 하만이 달려 죽은 나무(Gallows)도 교수대로써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에스라 7:9-10). 갈라디아서 3:13에 나무(Tree)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나무(Tree), 교수대(Gallows), 장대(pole)로 표현된 이 물건들은 모두 나무로 만들어졌고 십자가를 보여주는 다른 형태의 이름들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는 만천하 사람들이 보고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높이 들려졌습니다. 그러나 높이 들려진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갈라디아 성도들은 제대로 믿지 못하고 흔들리고 요동했습니다. 이들에 대해 바울은 어리석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에 밝히 보이거든 누가 너희를 꾀더냐(3:1)”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는 가장 우선적으로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신 십자가입니다.

B.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이미 영원히 단번에 과거에 완료된 사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은 이천년 전에 벌어진 과거의 사건(He Was Crucified)입니다. 영원히 단번(Once for All)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속의 방법입니다. 이 십자가는 한 번에 완성된 일이며 천하백성 모두가 알도록 공표하신 역사적인 사실(Historical Fact)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예수님께서 못 박혀 달려 죽으신 십자가를 가장 먼저 이야기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이 십자가를 알도록 보여주셨는데 왜 의심하며 흔들리느냐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신앙의 푯대입니다.

. 둘째,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십자가가 있습니다(2:20)

두 번째는 내가 못박혀 죽은 십자가입니다. 이 말씀은 이천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나도 그때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이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함께 그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 장사된 것이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그의 죽음에 동참자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A. 내가 못 박힌 십자가에 대하여(2:20a)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순(ϭυν, 함께)과 에스티우로오(έϭταύροω, 못박히다)의 합성어입니다. 함께 못박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곳일 뿐 아니라 바로 나도 함께 못박혀 죽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 같이 나도 그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죄와 율법과 정욕과 사망이 종식되고, 죄의 몸이 멸하여 새 생명으로 다시 살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로마서 6:1-7). 기독교는 나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신앙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복을 받기 위해서 종교를 찾습니다. 자신의 만족, 행복, 건강, 형통, 장수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십자가는 완전히 정반대의 개념입니다. 나의 죽음, 자기 부인, 자기 파괴, 자아의 근절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못박혀 죽으신 그 십자가는 내가 함께 죽은 십자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보는 십자가의 두 번째 메시지입니다.

B. 내가 십자가에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힘의 적용(2:20b)

1. 내가 십자가에 못박힌 삶은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번제단(The Broze Altar)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번제단은 하나님의 성막(The Tabernacle)에 들어갈 때 가장 먼저 보이는 바깥뜰의 성구인데 구리로 만들어진 큰 제단입니다. 이 번제단에서 모든 동물들은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번제단과 물두멍을 거쳐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진설상과 금촛대, 분향단을 만나고, 휘장을 지나 지성소에 들어가 법궤와 하나님의 속제소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첫 번째 절차는 모든 동물을 먼저 번제단으로 끌고 와서 죽이고 불에 태워 드리는 것입니다. 소나 양이나 염소, 비둘기 등 어떤 생명체도 살아서는 하나님 앞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기독교는 삶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기초입니다. 이 번제단은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먼저 자신에 대하여 죽는 것이 믿음생활의 출발점입니다. 내 자아에 대하여, 내 과거에 대하여 십자가에서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로마서 1:1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쓰면서 첫 부분에예수 그리스도의 종 나 바울은이라고 표현하면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종은 자유가 죽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의지, 자기 뜻, 자기 생각이 죽은 사람이며 오직 주인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되는 존재입니다. 그래야 종노릇을 할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소유, 자기 자아, 자기 고집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이제는 내 안에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살아 계셔서 그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믿음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래전에 어떤 교회에서 목회할 때 노회에 속한 시찰내의 여러 교회들이 모여서 연합제직수련회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제직들은 목사, 전도사, 장로, 집사, 권사, 서리집사까지 포함됩니다. 보통 작은 교회들은 제직수련회를 할 만한 재정이나 여건이 안되었기 때문에 시찰회에서 일년에 한번 연합으로 제직수련회를 열고는 했습니다. 그 해에는 제가 섬겼던 교회에서 제직수련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교회 주차장이 협소하여 동네주민들이 주차하는 공간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골목길까지 교회차들로 가득찼습니다. 이를 위하여 교회는 행사안내문을 통해 주민들에게 미리 주차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 살던 어떤 분이 퇴근길에 평소 자기가 주차하던 곳에 다른 차가 주차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많이 났습니다. 아마도 연락을 못 받았는지 소리를 지르면서 육두문자를 쓰면서 교회 욕을 하고 거칠게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때 임시로 행사의 주차관리책임을 맡은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공수특전사 출신으로 190Cm정도의 장신에 힘도 좋고 목소리도 큰 분이셨습니다. 주차 문제로 그 주민이 소리를 지르니까 이 목사님은 가까이 가서 그 사람의 멱살을 잡고 한 손으로 들어 올렸습니다. 그 목사님은 이 곳은 동네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공용공간인데 왜 주인인체 하면서 소리지르냐며 야단쳤고, 다시 큰소리를 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공포에 질린 그 주민은 꼼짝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나중에 듣고서는 주차관리책임을 맡은 그 목사님에게 "목사님 안에 계신 예수님이 나오셔야 하는데, 목사님의 옛사람이 나왔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나오셔서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데 내가 죽지 못하고 자아가 튀어 나와서 행동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목사님은 교회안에서 일이 생길 때마다 자기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목회를 오래 하지 못하고 그만두었습니다.

2. 내가 십자가에 못박힌 삶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삶입니다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다는 말은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문제인데 이 같은 자기 죽음의 삶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가 임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나를 사랑하셔서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자가 됩니다. 그러나 실천적인 차원에서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 안에서 살아 계시기보다 이미 죽은 나의 옛 사람이 자꾸 살아나옵니다. 바울은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러므로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고 말씀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자기 죽음의 삶이 실현됩니다. 바울이 말하는 두 번째 십자가는 내가 못박혀 죽은 그 십자가입니다.

. 셋째는 육체와 함께 나의 정과 욕심이 못 박힌 십자가입니다(5:24)

세 번째 십자가는 나의 정()과 욕심(慾心)이 못 박혀 죽은 십자가입니다. 바울은 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했고, 여기서는 다시 한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내가 죽음으로 이미 끝이 났다고 하지만 죽지 않고 꿈틀거리며 다시 살아나는 것이 정과 욕심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하지만 우리 안에는 여전히 처리 안되고 붙어 있는 옛 것들,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육신의 쓴 뿌리가 있습니다. 죽었다는 신앙고백과 함께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도 우리 안에는 끝까지 남아 있는 쓴 뿌리는 정과 욕심입니다.

A.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이 못 박힌 십자가

바울은 정과 욕심이 육체(싸르카, σάρκα)와 함께 못 박혔다라고 말합니다. 육체(싸르카)는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을 가진 성품(Sinful Nature)으로, 곧 죄의 힘, 죄의 본성, 죄의 성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난 후에 내 옛사람은 십자가에 죽었다고 고백하지만 아직까지 사람의 육신 속에는 정과 욕심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육신 속에 있는 정과 욕심으로 표현합니다. (Passions)은 충동, 감정, 격정을 뜻합니다. 그리고 욕심(Desires, or Lusts)은 탐욕과 욕망을 뜻합니다. 내가 죽었다고 고백은 하지만 우리 안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옛 쓴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처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B. 정과 욕심을 죽이는 능동적인 태도

본문 2:20에 나오는 내가 십자가에 봇박혀 죽었다(ἐσταυρωμένος)는 말씀은 수동태(Passive)입니다. 내가 못 박힘을 향하여 죽었다(I Have Been Crucified)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5:24에서 못을 박았다는 것은 능동태로써 내가 육신의 정과 욕심을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3:1의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히심도 남에 의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수동태로 나타내며, 2:20의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단어도 역시 수동태입니다. 그러나 5:24에서 육신과 함께 정과 욕심을 못박았다는 말씀은 능동태(Active)를 쓰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내가 못 박았다는 것은 신앙인이 죄와 싸우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죄와의 싸움은 우리 의지와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이는 인간의 의지와 결단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능력과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5:24-25).

1996년 봄에 영국 유학을 마무리 하면서 라브리(Labri)라고 하는 곳에 가서 몇 주간 공동체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라브리는 프란세스 쉐퍼 목사가 스위스에 세운 공동체인데 쉼터(Shelter)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에 지치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이 그 곳에 와서 휴식하고 교제하면서 기독교 진리로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 공동체입니다. 전 세계에 있는 여러 곳의 라브리공동체중 하나인 영국의 라브리에서 몇 주를 지냈습니다. 보통 그 곳에서의 일과는 이렇습니다. 아침에는 책을 읽는 등의 개인공부시간을 갖습니다. 점심식사 이후에는 노동을 하고, 저녁에는 식사후에 차를 마시면서 신학과 삶의 문제를 토의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특별히 낮시간의 노동은 직분에 상관없이 모두가 해야 합니다. 한번은 저와 저보다 어린 캐나다 형제가 함께 뜰에 나가서 나무를 정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이 일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작업한 나무는 굵고 큰 나무였는데 이 나무에 넝쿨하나가 뱀이 휘감은 것처럼 그 나무의 몸통을 수십겹을 돌면서 들러 붙어 있어서 이를 나무에서 떼어내는 일이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이 톱과 도끼를 이용해서 나무에 붙어있는 넝쿨을 잘라내는데 그 넝쿨은 질기고 힘이 세고 큰 넝쿨이었습니다. 그 넝쿨은 나무가 흡수할 만한 영양분을 다 빼앗아 흡수해서 그 넝쿨의 두께는 그 나무 두께만큼 두꺼워져 있었습니다. 이 넝쿨 때문에 나무가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캐나다 친구와 함께 넝쿨을 도끼로 찍고, 톱으로 자르면서 4시간의 고된 노동을 한 후에야 넝쿨을 제거하는 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도끼로 찍어내어 버려야 할, 톱으로 잘라내야 할 정과 욕심이 있습니다. 나무에 들러 붙어있는 넝쿨처럼 우리 삶에 붙어 있는 지긋지긋한 죄악과 육정의 쓴 뿌리를 처리해야 합니다. 바울은 육체의 일을 죽이고 십자가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로 새성품이 나오는 삶을 도전합니다(5:19-25).

1. 인간들의 육체의 일의 현저함에 대하여(5:19-21)

골로새서 3:1-5에서 바울은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와 다시 살리심을 받았을진대 위엣 것을 찾으라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하라고 하면서 땅의 지체를 죽이라 말합니다. 우리가 죽여야 할 땅에 있는 지체들은 음란과 더러운 것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 같은 것들인데 탐심은 우상숭배니 이런 모든 것들을 네가 죽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거룩함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종다운 삶을 방해하는 육신의 정과 욕심이기 때문에 이를 과감하게 죽여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살아가는 육체의 일은 현저합니다(5:19). 그것들은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술취함, 방탕함 그리고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5:20-21).

2. 성령의 열매에 대하여(5:22-25)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육신의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인데 모두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고 정과 욕심에 붙들린바 되어 계속 실패를 경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같은 육체의 일은 십자가의 능력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소멸됨을 믿으시고 능동적으로 땅의 지체를 죽이는 믿음생활을 해야 합니다.

. 넷째는 세상과 나 사이에 있는 십자가입니다(6:14)

A. 세상과 나 사이에 있는 십자가

바울이 말하는 네 번째의 십자가는 세상과 나 사이에 있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세상과 나를 분리시켜 줍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전에는 세상과 나는 하나가 되어 같이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내가 세상이고 세상이 나였습니다. 내 안에 육신과 세상이 붙어 있었고 그 뒤에는 마귀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세상은 나에 대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나도 세상에 대해서 또한 그러하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과 나 사이에 십자가를 두어야합니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세상과 결별하고 헤어지는 수순을 밟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네 번째 십자가입니다.

B. 세상과 작별하는 신앙인

우리가 주님을 모를 때 세상과 나는 분리되지 않고 하나였습니다. 세상풍습, 세상습관, 세상적 삶의 스타일이 나와 한 통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내 안에 들어 오는 순간에 세상은 나와 분리되면서 나를 떠나 나와 작별을 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다시 찾지 않고 세상에게 작별을 고하는 이것이 세상에 대해서 내가 못 박힌 십자가의 신학입니다. 요한일서 2:15-17에서 사도 요한은 너희는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갖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욕망), 안목의 정욕(눈으로 보고 쾌락을 즐기고 싶은 욕망), 이 생의 자랑(나타내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욕망)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좇아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세상과 정욕도 다 지나가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세상을 십자가 저편으로 분리시켜 놓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가정생활,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하며 세상안에 살아갑니다. 하지만 세상에 속한 것들은 십자가 저편으로 멀리 분리시켜 놓는 것이 십자가의 신학입니다.

토저(A.W.Tozer)목사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는 것은 다시는 세상을 돌아보거나 후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롯과 가족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할 소돔땅을 떠납니다. 그러나 소돔을 벗어나서 가는 길에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을 뒤돌아보면 안됩니다. 내가 즐기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소유하고, 내가 행복해했던 과거의 것들에 대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감한 단절이 기독교입니다.

어떤 젊은 목사가 노년의 목사님에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젊은 목사는 목회하면서 참기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호소를 하였습니다. 노인 목사는 젊은 목사에게 그 동네 뒷 산에 있는 한 무덤에 가서 거기 누워있는 시신에게 노래하고 찬양하고 칭찬하고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영문도 모른채 젊은 목사는 산에 올라가 무덤의 시신에게 소리치면서 시신을 찬양하고 칭찬하고 내려 왔습니다. 노인 목사는 돌아온 젊은 목사에게 무덤의 시체가 어떤 대답을 하였는지 물었고, 젊은 목사는 그 시신이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노인 목사는 한번 더 산에 올라가 무덤속의 그 시체를 향하여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붓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영문도 모른채 젊은 목사는 무덤에 가서 시신을 향하여 온갖 저주를 퍼붓고 그를 욕하고 내려왔습니다. 노인 목사는 젊은 목사에게 이번에는 시신이 어떤 대답을 하였는지 물었습니다. 젊은 목사는 역시 아무 응답도 없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노인 목사는 죽는 다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일세라고 말씀하였다고 합니다. 시체는 죽었기에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람은 세상의 환호, 노래, 칭찬, 영광에 도취되거나 움직이지 않습니다. 또한 세상의 온갖 비난, 핍박, 모욕이 와도 시체는 죽었기 때문에 꿈틀대지 않습니다. 세상에 대해서 죽는다는 말의 의미는 이 세상의 영광이나 핍박이나 그 어떤 것들도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죽은 자는 요동치 않습니다. 꿈틀대지 않습니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은 세상과 결별하여 세상과 나 사이에 십자가가 서있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것이 사도 바울이 말하는 네 개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못박혀 죽으신 십자가, 내가 못박혀 죽은 십자가, 육신과 함께 정과 욕심을 못박은 십자가, 세상에 대하여 죽은 십자가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바울은예수의 흔적이라고 말씀합니다.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6:17).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그 몸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었습니다.흔적(티그마, στίγματα, Brand Mark)은 눈에 띄는 표식입니다. 바울은 십자가를 증거한 표식으로 그 몸에는 각종 흔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고, 채찍에 맞고, 멍들고, 깨진 상처가 온 몸에 가득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훈장이요 자랑이었습니다. 그의 몸에 남은 흔적들은 모두 십자가 때문에 얻은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에도 흔적이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아가 죽고, 깨어지고, 무너져버린 흔적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모든 십자가의 흔적들이 그의 인격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몸과 영혼과 인생이 십자가의 죽음의 흔적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결론// 믿음이란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나도 죽었습니다. 육신의 정과 욕심도 죽었고, 세상에 대하여서도 죽었습니다. 작별을 고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흔적을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삶을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정리: 강퐁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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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 품질보증(品質保證) 2025-03-02 베드로전서 2:7-10 이동철 목사 98
656 사십주강해(Vll):십계명(4):제7·8계명 2025-02-23 출애굽기 20:14-15 노창영 목사 84
655 사십주강해(Vl):십계명(3):제5·6계명 2025-02-16 출애굽기 20:12-13 노창영 목사 102
654 사십주강해(V):십계명(2):제3·4계명 2025-02-09 출애굽기 20:7-11 노창영 목사 98
653 사십주강해(Ⅳ):십계명(1):제1·2계명 2025-02-02 출애굽기 20:1-6 노창영 목사 111
652 사십주강해(Ⅲ):사도신경(3)-죄용서·몸의 부활·영생 2025-01-26 요한일서 1:9,로마서 6:6, 고린도전서 15:44,요한복음 5:24 노창영 목사 105
651 사십주강해(Ⅱ):사도신경(2)-성령님·교회·교제 2025-01-19 고린도후서 13:13,요한복음 14:26,고린도전서 1:2, 에베소서 4:2-3,12 노창영 목사 114
650 사십주강해(Ⅰ):사도신경(1):-성부·성자 2025-01-12 이사야 45:18,마태복음 6:31-32,빌립보서 2:5-11,베드로후서 3:14 노창영 목사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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