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2026-09-13 10:53:45

노창영 목사
잃어버린 세 가지 비유(Ⅱ):탕자(1)

본문 말씀 : 누가복음 15:11-24

● 주일설교요약

제목: 잃어버린 세 가지 비유(Ⅱ): 탕자(Ⅰ) 본문: 누가복음 15:11~24 설교자: 노창영 목사

 

서론//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잘 알아야 믿음 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2:4, 요3:16). 이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열망이 가장 잘 드러난 본문이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잃어버린 세 가지 비유입니다. 잃어버린 비유를 세 가지로 다양하게 말씀하신 이유는 중복적인 언급을 통해 구원의 중요성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목자, 여인,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적이고 입체적인 구원 사역의 개입을 보여주고 있으며 구원의 역사가 성경 속의 핵심 주제임을 강조합니다. 지난 주일은 잃어버린 양의 비유와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를 통해 은혜를 나누었고, 오늘은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를 설교하고자 합니다. 이 잃어버린 비유에서 탕자는 둘입니다. 오늘은 잃어버린 둘째 아들의 비유를 먼저 다루고, 다음 주일은 잃어버린 큰 아들의 비유를 살펴보겠습니다.

 

Ⅰ. 아버지에게 자기 분깃을 요구한 둘째 아들(15:11~12)

A. 팔레스타인의 상속규례

이 본문은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동지역의 상속규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상속규례는 3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①아버지 사후에 이루어집니다. ②사전상속(선취상속) 즉 증여도 가능했습니다. ③보통 상속분은 장자가 다른 아들보다 2배를 받았습니다(신21:17). 따라서 큰 아들은 2/3를 둘째 아들은 1/3을 받았습니다.

 

B. 둘째 아들이 보인 행동의 분석

본문에서 등장한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The share of the property that will belong to me, NRSV)을 요구했습니다. 이 요구는 매우 무례한 요구입니다. 아버지를 죽은 자로 여기는 불효입니다. 상속의 주권자인 아버지에게 아들은 달라고 할 권한이 없습니다. 자녀가 미래 상속분을 증여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①아버지를 죽은 자로 취급하는 자세이고 ②아버지와의 관계 단절까지도 가능하게 하는 무례하고 모욕적인 행동입니다. 아브라함은 죽기 전에 ①이삭에게 대부분의 재산을 주었고 ②서자들(이스마엘과 후처 그두라가 낳은 6명의 아들)에게 재물을 주어 동방에 가서 살게 함으로 미래의 상속 유산 분쟁의 소지를 미리 없앴습니다(창25:1~8). 아브라함의 경우는 자식이 먼저 유산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뜻대로 미리 증여한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위한 것을 남겨두고 그들에게 상속될 부분을 각각 나누어 준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둘째 아들은 ①무례한 요구, ②나름의 행복의 유토피아를 찾아 나서는 독립의 요구, ③아버지보다 그 재산을 더 사랑하는 속물적인 인간성을 보여줍니다. 아버지는 이런 둘째 아들에게 관대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의 분깃을 주었습니다. 이미 제물을 가지고 독립할 고집을 가진 아들을 내버려 두었습니다. 원하는 대로 해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사람이 불순종의 고집으로 일관하면 하나님께서는 탕자처럼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십니다. 로마서 1장에서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범하는 세 가지 바꿔버린 죄가 나옵니다(롬1:24~26). ①하나님의 영광을 우상으로 바꾸고, ②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③순리를 역리로 바꾸는 죄(동성연애)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셨다고 말씀합니다(롬1:14, 16, 28). 이는 가장 무서운 단계로 우리는 자기 고집대로 가다가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는 상실한 영혼이 되는 것까지 가서는 안됩니다.

 

Ⅱ. 아버지를 떠난 아들의 삶과 그 결과(15:13~16)

A. 재산을 다 모아서 먼 나라로 감(15:13a)

둘째 아들은 재산을 다 모았습니다. 이는 아마 토지, 집, 가축, 농산물, 농기구, 귀중품, 돈과 같은 자산을 먼 나라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화폐(현금이나 귀중품)로 바꾼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현금 가치로 바꾸어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여기서 먼 나라는 문자적으로 아버지의 지역, 종교, 문화에서 완전히 떨어진 다른 나라를 말합니다. 이는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신만의 독립생활을 위한 공간입니다. 떠났다라는 것은 경제적 독립 이상의 아버지의 세계를 떠난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먼 나라는 미국, 호주, 캐나다와 같은 어떤 지리적, 공간적 개념이 아닙니다. 먼 나라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인간의 자리, 하나님을 떠난 그 마음, 하나님을 잊은 삶을 말합니다.

 

B. 탕자가 떨어진 일차적인 인생의 밑바닥(15:13b~14)

둘째 아들은 먼 나라에서 허랑방탕(虛浪放蕩)한 삶을 살며 자신의 재산을 다 허비했습니다. 허랑방탕은 헬라어로 아소토스(ασωτως)로 아니다(α)와 구원하다, 보존하다(σῴζω)의 합성어로 보존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즉 그는 세상 속에서 재산을 보존하지 못하고 낭비, 방탕하는 무절제의 삶을 산 것입니다. 「허랑방탕」이란 번역을 살펴보면 공허하고(虛) 물결처럼 흔들리며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고(浪) 놓아버린 것처럼 자기 멋대로 살며(放) 세상에 휩쓸려 다니는(蕩)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잘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흉년까지 들어 그는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재산을 허비해도 빚을 내거나 친구들에게 의지하여 어느 정도는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구걸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결국 환경도 그를 저주합니다. 궁핍함의 밑바닥을 칩니다. 탕자는 드디어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이 밑바닥은 경제적, 물리적, 윤리적 밑바닥입니다. 그러나 탕자에게는 더 떨어질 곳이 남아 있었습니다.

 

C. 탕자가 떨어진 밑바닥 밑의 밑바닥 인생(15:15~16)

탕자는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살았습니다. 붙여 사는 것, 에코레데(ἐκολλήθη)는 부착하다, 달라붙다라는 의미로서 영어로는 hired(NIV), 즉 고용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오늘날 직장 고용과는 다른 의미로 쉽게 말하면 노예나 종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는 사회적, 인격적 바닥을 의미합니다. 그는 들에 나가서 돼지를 쳤는데 돼지는 태생적으로 15도 이상 고개를 들지 못해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만 바라보는 동물입니다. 이는 단순히 살찌고 식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세상만을 바라보는 인간에게 돼지같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돼지는 율법적으로 부정적인 동물입니다.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은 그가 지금 돼지같은 동물 수준으로 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인간 최저의 바닥입니다. 이는 마지막 날에 마귀가 들어가는 무저갱(無底坑, Bottomless Pit, 밑이 안 보이는 바닥 없는 구렁, 계20:1~3)에 빠진 것과 같습니다. 바닥 중의 바닥의 예고편입니다. 게다가 그는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κεράτιον)로 배를 채우려고 해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사회적, 인격적 바닥에 동물 수준의 최저 인생으로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Ⅲ. 탕자의 회심(15:17~20a)

이 탕자는 결국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20a). 옛날 삶에서 돌이키는 것, 이것이 회심(repentance)입니다. 본문은 회심 과정을 5단계로 보여줍니다.

①먼저 탕자는 스스로 돌이켰습니다. 원문 헬라어의 영어 번역은 ‘He came to his sense’로서 정신을 차렸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상태를 자각하고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②다음으로 주려 죽게 된 자신의 처지를 한탄 합니다(17b). 절박한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생명, 미래, 소망, 기대 모든 것이 끊어진 절박한 순간임을 자각한 것입니다. ③세 번째로 죄를 자백합니다(18). 그는 하늘(하나님의 우회적 표현)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④네 번째로는 자신은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으니 품군의 하나로 봐달라고 간구합니다(19). 이는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떠나갈 때는 자기 권리를 주장(소유권 주장)하는 교만과 독선의 모습이라면 이제 돌아올 때는 자기 권리를 포기(소유권 내려놓기)하는 품군과 같이 겸손하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먼지(dust)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욥이 자신을 적신으로, 다윗이 자신을 짐승, 동물, 벌레로 묘사한 것처럼, 므비보셋이 다윗 앞에서 자신을 죽은 개라고 말하며 바짝 엎드린 것과 같은 겸비한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⑤마지막으로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20a). 결단하며 행동으로 나서야 합니다.

 

Ⅳ. 아버지의 용납과 탕자의 신분 회복(15:20b~24)

A. 아버지의 사랑과 용납(20b~21)

아들이 돌아올 때 아직 거리가 먼데 아버지는 멀리서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 나와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탕자가 오기를 매일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 아버지는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24시간 기다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24시간 주무시지도 않고 기다리시며 우리의 회심을 기다리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compassion). 불쌍히 여기심은 하나님 사랑의 한 단면입니다. 먼저 달려와 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춤으로 그를 용납하고 용서하며 화해하십니다. 언제나 받아주시고 품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묻지 않고 무조건적인 용서를 해주십니다(21). 탕자가 자기 죄를 자백하고 아버지 아들로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아버지께 아뢸 때, 아버지는 과거의 죄를 묻지도 않았고 언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잔치를 벌입니다. 사랑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십자가 아래 묻어둡니다. 그저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아버지의 모습에는 모든 것을 용납하시고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B. 아들 신분의 회복(15:22)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위하여 종들에게 즉시 세 가지를 명령합니다. ①그에게 제일 좋은 옷(The Best Robe)을 입힙니다. 탕자의 돼지처럼 살아온 죄와 고난으로 얼룩진 옷을 벗기고 거룩한 옷으로 입혀 줍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진 정결하고 깨끗케 된 의의 옷을 보여줍니다(슥3:1~7, 계7:13~14). 아들의 자격의 인정입니다. ②손에 가락지를 끼워줍니다. 반지는 인장 반지로 가족이나 가문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반지를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의 회복을 보여줍니다. 요셉이 바로 왕에게서,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에게서 인장 반지를 받았듯이 아들로서 신분과 권세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③발에 신발을 신깁니다. 고대의 노예는 맨발로 다녔습니다. 자유인은 신발을 신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종(노예)이 아니라 자유인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자격인 의의 옷, 아들의 신분인 반지, 자유인의 신분인 신발을 신겨줍니다. 완전한 회복입니다.

 

C. 천국잔치(15:23~24)

아버지는 이제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즐기자고 하십니다. 손님 접대를 위해 길렀던 송아지를 잡는 것은 유대인들의 풍습입니다(삼상28:24). 아버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얻었기’ 때문에 최고로 기쁜 잔치를 베푸는 것입니다.

 

결론// 영적으로 죄와 허물로 죽어 있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던 사람은 부활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을 얻고, 하나님께서 되찾으신 아들이 됩니다. 혹시 교회를 다니면서도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먼 나라에 있는 성도가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 아버지께 즉시 돌아와야 합니다. 속히 주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찾아 나서는 신앙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들어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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