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노창영 목사 -
룻기강해(Ⅲ):결심과 섭리와 선교와 소망
본문 말씀 : 룻기 1:15-22
제목: 룻기강해(Ⅲ):결심과 섭리와 선교와 소망 본문: 룻기 1:15-22 설교자: 노창영목사
서론//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모든 성도님들 위에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룻기 강해 세 번째 시간입니다. 본문은 룻기 1:15-22의 말씀입니다. 룻기는 사사시대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룻기는 가장 타락한 사사시대 중에서 특별히 이스라엘에 큰 흉년이 들었던 때에 베들레헴에 살고 있던 한 가정의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는 베들레헴의 큰 부자였습니다. 이들은 풍족한 재산을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어기고 이방 땅 모압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이민을 간 모압땅에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게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모압땅에서 계속 살기 위하여 두 아들을 모압 여자에게 결혼을 시켰습니다. 모압땅에 우거한 지 10년이 가까이 되었을 때 두 아들마저 죽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나오미와 두 며느리였습니다. 빈털터리가 된 나오미는 고향 땅 베들레헴에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두 며느리와 함께 고향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중간에 서서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너희가 나를 선대한 것이 고맙지만 이제는 나를 따라오지 말고 너희 어미의 집 모압땅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남편을 만나 편안한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두 며느리는 소리 높여 울며 어머니를 끝까지 따라가겠다고 말합니다. 나오미는 다시 두 며느리에게 이스라엘의 형수승계법의 불가능을 설명해주며 나에게 소망이 없으니 너희 어미의 집 고향 땅 모압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둘째 며느리 오르바는 나오미에게 입을 맞추고 고향 땅 모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첫째 며느리 룻은 나오미를 끝까지 따라가겠다고 결단하며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가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나오미는 둘째 며느리 오르바가 떠나자 첫째 며느리 룻에게 너도 네 동서처럼 네 백성과 네 신에게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룻은 나에게 어머니를 떠나거나 돌아가라고 강권하지 마시라고 말합니다. 결국 두사람은 베들레헴으로 함께 가게 됩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Ⅰ. 먼저, 룻의 위대한 결단의 고백을 살펴 보겠습니다(1:15-18절)
믿음은 입술의 고백을 통하여 입증됩니다. 룻은 위대한 결단의 고백 속에서 그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A. 위대한 신앙고백들
우리는 성경에서 위대한 신앙고백을 볼 수 있습니다.
①먼저, 라합의 신앙고백을 보겠습니다. 그녀는 여리고의 기생이었습니다. 그녀는 여리고에 정탐 온 두 사람에게 너희들의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라고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수2:11).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는 이방 여인이 하나님의 소문을 듣고 하나님에 대하여 고백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②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을 마치고 나이 늙어 많은 장로와 백성들에게 고별설교를 하면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는 신앙고백과 결단을 합니다(수24:14-15).
③히스기야왕은 예루살렘 성을 함락하려고 둘러 싼 앗수르군대의 왕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받고 하나님께 그룹 위에 계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의 홀로 계신 하나님이시고 천지를 조성하신 하나님이시니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왕하19:14-19).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고백과 기도를 들으시고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대 185,000명을 송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④베드로는 가이샤랴 빌립보에서 신앙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마16:16). 이러한 고백 위에 믿음의 건축물이 든든히 서게 됩니다.
B. 룻의 신앙고백적 결단의 기도(15-18절)
나오미는 오르바가 떠나고 룻에게 너도 네 동서처럼 네 백성과 네 신에게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좇겠다는 결단을 합니다(15절). 그리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단순히 시어머니를 따라가는 애정의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과 결단입니다. 둘째 며느리 오르바는 이미 고향 땅 모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큰며느리 룻은 “나에게 어머니를 떠나라고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라는 결단과 고백을 하고 시어머니를 좇아갑니다(16-17절). 오르바와 룻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1. 오르바에 대하여
오르바는 여호와 신앙이 있는 나오미의 집안에 시집을 왔습니다. 그러나 오르바는 여호와 신앙의 은혜의 물이 마음 깊은 곳까지 젖어 들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결국 오르바는 그모스신을 섬기는 옛 종교와 옛 백성과 옛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모압사람이 섬기는 우상은 그모스신입니다. 모압사람들의 별명은 그모스의 백성이었습니다(민21:29). 모압사람들은 그모스신에게 자신의 자녀를 불에 던져 희생제물로 바쳤습니다. 모압사람들은 아주 끔찍한 아동학대를 저지르는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어린아이들을 불에 던져 제물로 드리는 우상숭배자들을 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동을 학대하는 이방 우상숭배를 가증히 여기셨습니다. 또 솔로몬도 예루살렘 성전에 그모스신당을 세워 하나님의 큰 진노를 사게 됩니다. 오르바는 나오미의 집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겉으로만 적셔진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옛 종교와 삶으로 돌아갑니다. 오르바처럼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의 형식만 가지고 있고 내면까지 하나님의 신앙으로 채워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2. 룻에 대하여
룻은 나오미 집에서 여호와 신앙이 뼛속 깊은 곳까지 적셔졌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고백합니다(16b절). 룻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견고하였습니다. 오르바와 달리 룻에게는 내면적 변화와 신앙고백이 있었습니다. 룻은 옛 백성의 신이었던 그모스신을 섬기는 끔찍한 아동학대의 희생제사를 완전히 버렸습니다. 아마도 룻은 옛 문화와 우상숭배에 대한 영적 할례가 있었을 것입니다. 룻은 옛 종교와 삶에서 완전히 돌아서고 온전히 여호와 신앙을 따르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나오미를 따르는 룻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으로 바꾸어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예수님께서 유숙하시는 곳에 나도 유숙하고, 예수님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예수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예수님께서 죽는 곳에서 함께 죽어 장사지내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C. 결심의 중요성에 대하여
나오미는 룻이 굳게 결심한 것을 보고 말하기를 그쳤습니다(18절). 그리고 룻은 나오미를 붙좇아 따라 갑니다(14절). 영어성경NIV를 보시면 붙좇다라는 단어가 Cling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히브리어로는 다바크(דָּבַק)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따라갔다, 결합되었다, 하나가 되었다는 아주 강력한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다바크해야합니다. 주님께 붙들려야 합니다. 중세가 끝나가는 종교개혁기에 마틴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유럽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스위스 바젤에 살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독일 비텐버그에 살았습니다. 이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 이신칭의를 깨닫게 됩니다. 스위스 바젤에 있는 마틴은 카톨릭의 잘못된 가르침을 버리고 십자가 보혈을 통해 얻은 은혜와 믿음의 신앙을 견고하게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믿게 된 믿음의 고백을 양피지에 적어서 자신의 집에 있는 벽돌 하나를 꺼내어 그 안에 넣고 다시 그 벽돌을 닫았습니다. 그 양피지 안에는 “십자가와 보혈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믿습니다. 오 주님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위스 바젤의 마틴은 겁쟁이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나타내지 못하고 숨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잊혀졌고 200년 뒤에 그의 집이 부서질때 그 양피지가 발견됩니다. 독일 비텐버그에 있는 마틴은 비슷한 시기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신칭의를 깨닫게 됩니다. 이 마틴은 큰 결단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공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는 공적인 고백으로 인해 죽음의 위협을 경험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하나님 앞에 시인하셨는데 내가 어찌 세상 왕과 교황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고백하며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가 바로 마틴 루터입니다. 같은 동명이인이지만 한 사람은 숨었고, 한 사람은 드러냈습니다. 이처럼 결단이 중요합니다. 룻의 결단과 고백이 여러분의 결단과 고백되시기를 바랍니다.
Ⅱ. 둘째로, 나오미가 깨달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19-21절)
A.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
나오미는 풍족하게 모압땅으로 갔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제멋대로 살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전까지 내버려 두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내어 던지셔서 깨달음을 주십니다. 인간은 어리석습니다. 인간은 자신 속에 있는 고집과 자존심과 옛 자아가 무너지고 깨질 때에야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고약한 습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내가 이번에는 이 땅의 백성들을 내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렘10:18). 우리는 괴로움이 올 때나 고통이 올 때나 모든 것이 무너질 때에야 비로소 깨닫고 주님께 돌아갑니다. 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①야곱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거짓말로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름뿐인 장자권을 가졌고 부모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먼저 죽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사랑했던 아들 요셉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고향도 잃어 버렸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상실하고 나서 깨닫습니다. 하나님꼐서는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내어던져 버리셨습니다.
②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범죄한 이후로 부터 모든 것을 상실합니다. 다윗은 왕의 명예와 영광을 잃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난을 일으키고, 압살롬과 세바가 반란을 일으키고, 3년동안 기근을 경험합니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하였고 그 징계로 3일 동안의 전염병으로 백성들중 70,000명이 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영광과 권세를 내던지셨습니다. 다윗은 그때 비로소 깨닫습니다.
③요나를 보겠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담대한 선지자요 권세와 품격이 있는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정반대인 다시스로 가려고 욥바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다시스를 향하여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배 안에 있던 선원들이 제비를 뽑아 누구 때문에 이 풍랑이 왔는지 그 이유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결국 요나가 제비뽑히게 되었고, 선원들이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풍랑을 오도록 한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를 나무랍니다. 세상의 선원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의 권위와 품격이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④느부갓네살을 살펴봅시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단2,3장)을 알면서도 바벨론 도성을 완성한 자신의 공로와 권위를 내세우며 스스로 자랑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를 폐위시키시고, 그가 짐승처럼 살면서 일곱 때를 지내게 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이 겸손히 하나님을 우러러 보며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의 왕권을 다시 회복시켜주셨습니다(단4장).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어던지셔야 깨닫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풍족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모압땅으로 갔지만, 남편과 두 아들이 죽고 모든 것이 다 상실되었을 때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나오미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내어 던져져야 비로소 이를 통해 깨닫는 어리석은 인간들입니다.
B. 나오미가 깨달은 하나님의 섭리(19-21절)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과 모든 재산을 다 잃고 나서 자신과 두 며느리와 함께 남게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끼고 모든 것이 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오미에게 살 길을 주십니다.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갑니다. 나오미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 비로소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깨닫게 됩니다.
①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치셨음을 고백합니다(13b절).
② 나오미가 고향 땅 베들레헴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오미가 돌아온 것을 본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실패하고 빈손으로 이방며느리와 돌아온 나오미에게 네가 나오미냐고 말합니다. 나오미는 그들에게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은 희락입니다. 마라의 뜻은 쓰다입니다. 나오미가 자신을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한 까닭은 풍족하기 위해 모압으로 나갔던 자신이 모든 것을 상실하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징벌하시고, 괴롭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나오미는 모든 것을 잃고나서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사람은 영적 지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의 채찍과 사랑의 막대기를 교훈으로 주심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삼하7:14).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이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을 주실 때에는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과 생명을 주시려 함임을 알아야 합니다(렘29:11). 나오미처럼 이 사실을 빨리 깨닫고 영성적인 눈이 열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Ⅲ. 다음으로, 모압선교의 열린 문에 대하여 살펴 봅시다(22a절)
A. 모암사람에 대한 성경의 기록
모압사람에 대한 첫 번 기록은 창세기 19:36-37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하나님의 은혜로 멸망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원받았습니다. 롯의 두딸은 아버지에게 술에 취하게 만든 뒤 동침하여 큰 딸이 모압사람의 조상인 모압을 출산하였습니다. 모압사람은 근친상간의 후예입니다. 신명기 23:3-6에서 모압과 암몬 족속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대뿐 아니라 영원히 들어올 수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모압족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이후 광야생활을 할 때 떡과 물로 영접하지 않았고, 메소보다미아사람 브돌의 아들 선지자 발람을 뇌물로 매수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했습니다. 그래서 모압 사람들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과 모압인에게는 이 같은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었습니다.
B. 나오미의 자부 룻을 통한 모압선교의 열린 문
나오미의 며느리 룻은 모압 여인입니다. 그러나 룻은 여호와의 신앙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나오미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오면서 이방여인이 신앙공동체로 들어오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 것입니다(22a절). 모압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분명한 영적 경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룻을 통해 이 경계가 허물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방여인에게 신앙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들어간 룻은 남편 보아스를 만나 오벳을 낳습니다. 오벳은 다윗왕의 할아버지입니다. 이 다윗 왕의 혈통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옵니다. 모압여인 룻에게서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경계가 무너진 것을 봅니다. 이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넓은 은총의 열린 문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휘장이 찢어지고 구원으로 가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된 경계가 무너지게 됩니다(엡2장). 우리는 여기서 이방선교의 열린 소망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2:4).
Ⅳ. 마지막으로, 남은 자의 신앙에 대하여 살펴 봅시다(22b절)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이르렀을 때는 보리추수의 시기였습니다(22b절). 이때는 맥추절입니다. 맥추절의 시작은 초실절입니다. 초실절은 첫 번째 추수단을 제사장에게 가져가면 제사장이 하나님께 곡식단을 흔들어 요제로 바칩니다. 그렇게 맥추절은 50일동안 진행됩니다. 이 절기는 축하와 추수의 절기입니다. 이때는 농사꾼만 곡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을 위하여 떨어진 모퉁이의 것을 다 베지 않았고 떨어진 이삭을 줍지 않으므로 그들도 양식을 취하게 하였습니다(레23:22). 나오미와 룻은 모압 땅에서 빈털터리가 되어 베들레헴에 들어와 보니 보리추수의 때였습니다. 그리고 이삭줍기를 합니다. 소망과 은혜의 때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양식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 모든 것을 상실하고 인생이 무너져도 하나님께서 소망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으로 인하여 난파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다행히 살아남아서 표류하다가 어느 무인도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구조될 동안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헛간을 만들어 난파선에서 건진 몇가지 중요한 물건을 보관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구조의 길이 보이지 않자 먹을 것을 찾아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가 간신히 먹을 것을 찾아 헛간으로 돌아왔는데 그 헛간이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 불길과 연기를 보면서 모든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그는 허탈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가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는데 배 한 척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구조되었습니다. 자신을 구조한 배의 선장에게 그는 어떻게 나를 발견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선장은 멀리서 피어오른 연기를 보고 누군가 고립되었음을 알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불타는 헛간이 그를 구조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이 무너진 헛간과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무너진 자리에서부터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모든 것이 다 잘못되어도 그 자리가 소망의 자리입니다.
결론// 룻과 같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결단과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 나오미처럼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영적 시각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이방선교의 비전을 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상실되어도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요약: 이이레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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