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노창영 목사 -
주기도문강해(Ⅰ): 그 배경
본문 말씀 : 마태복음 6:5-15
주일설교요약
제목: 주기도문강해(Ⅰ)
본문: 마태복음 6:5-15
2025. 10. 12(주일)
설교자: 노창영 목사
서론// 주기도문(The Lord’s Prayer)은 주님(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이며, 기도의 표준(Model)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기도문을 보통 축도의 대체물로 여길 때가 많아 그 중요성이나 신학적 가치 등이 희석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주님께서 직접 말씀해주신 성경말씀이며 놀라운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은 주기도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기에 앞서서 이와 관련된 맥락과 배경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Ⅰ. 주기도문은 본받으면 안되는 우리의 잘못된 기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6:5-8)
A. 두 개의「그러므로」에 대하여(6:8-9)
예수님께서는「그러므로 저희는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시고(마 6:8a), 이어서「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마 6:9a). 이것은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할 잘못된 기도 행태가 계속되어 왔음을 지적하시고, 바른 기도의 새로운 방향(Direction)을 제시하시며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즉 본받지 말아야 할 기도(마 6:9-13)를 시작으로 새로운 기도의 모델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B. 본받으면 안되는 2가지 기도의 모습(6:5-7)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1-18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외식하는 종교인들의 3가지 행태를 지적하셨습니다. 첫째, 구제할 때 나팔을 불고 떠들며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는 모습입니다(마 6:1-4). 유대인들은 성전이나 회당에서 구제를 위한 모금액이 다 채워지거나, 어떤 사람이 거액의 구제금을 냈을 때 나팔을 불었는데 이것은 자기 자랑, 자기 과시, 자기 공로, 자기 의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 6: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은밀한 구제와 하나님의 상급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둘째, 금식(본문 순서상으로는 세 번째)입니다(마 6:16-18). 금식이란 음식 섭취를 금하거나 절제함으로 인간의 본능과 정욕을 죽이고 하나님만을 향하게 하는 아름다운 경건의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40일 금식을 하셨습니다(마 4:1-10). 아름다운 경건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이 행하던 금식이 순수한 동기와 목적이 아니라 자기 의, 종교성, 자의적 겸손을 바탕으로 얼굴을 흉칙하게 하고, 슬픈 기색을 띠고 사람 앞에 보이는 외식적 모습이 가득차 있음을 예수님께서는 지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금식하며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고,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경건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가 외식하는 기도입니다(마 6:5-6). 예수님께서는 본받으면 안되는 2가지 기도 모습을 말씀하셨습니다.
1.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입니다(6:5-8)
당시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하루에 3번(오전 9시, 낮 12시, 오후 3시) 기도하거나 이동 중이거나 여행 중에 있을 때에는 큰 길 어귀에서 서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외식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기 의와 자기의 종교성을 과시하였습니다. 외식하는 자(Hypocrite)의 원어는 휘포크리타이(ὑποκριταί)이며 이는 원래 「연극배우」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즉 외식으로 기도하는 자들은 가면을 쓰고 종교행위를 한 것과 같습니다. 다윗과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은밀히 만나는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자기 공로, 자기 의를 세우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는 사람이 연극하는 쇼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일대일로 나아가 내적으로 부딪히는 경험 즉 영적 교통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진실한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기도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골방(Your Room)」에서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골방은 원어로 타메이온(ταμεῖόν)으로 단절하다, 차단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 말씀은 모든 것을 끊고 주님과만 교제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아닌 다른 어떤 누군가에게 보이려는 종교행위, 쇼와 같은 기도는 모두 외식하는 기도입니다.
2. 중언부언하는 기도입니다(마 6:7-8)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이방종교의 주문과 같이 의미 없이 되풀이하고 반복(Vain Repetition)하는 기도의 모습을 말합니다. 중언부언은 원래 바탈로게오(βαττολγέω)란 말인데 이는 말더듬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같은 소리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이방인들의 기도의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대결했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주문을 외운 듯 하는 반나절의 기도(왕상 18:25-29)나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 소란을 일으켰던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무리들의 두 시간동안의 반복되는 기도(행 19:28-34)의 행태에서 잘 드러납니다.
기도의 주권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구하기 전에 우리가 필요한 것을 아시는 아버지께 아뢰는 것입니다(마 6:8). 내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누구신지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고 그 분에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크게 떠들고 반복하는 자기 중심의 외침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향하는 기도, 하늘의 과녁에 제대로 꽂히는 기도가 올바른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부르짖을 때 여기 있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사 58:9) 앞에 간절히 그리고 진실한 인격과 영성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오 할레스비(O. Hallesby)의『기도』에 언급된 것처럼, 기도란 내가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내게 찾아오셔서 내 마음을 두드리시는 그 손길에 대한 나의 응답이 기도입니다. 즉 기도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아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Ⅱ. 주기도문은 모든 기도자가 따라야 할 기도의 모델입니다(마 6:9-13)
예수님께서는 이같은 본받지 말아야 할 기도 모습을 예시하면서 계속 이어서 마태복음 6:9a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새로운 기도의 매뉴얼을 주십니다. 본문 마태복음 6:9b-13까지의 주기도문은 크게 2가지 틀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A. 상향적 기도(Upward Prayer)입니다(마 6:9b-10)
주기도문의 전반부는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돌리고 그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고 나라와 뜻을 구하고 찾는 상향적 기도로 구성됩니다. 기도란 순서가 있습니다. 무작정 시작할 때부터 구하고 찾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경배와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 하늘의 뜻이 먼저 응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의 보좌에 기도가 응해져야 그 기도가 다시 땅으로 내려옵니다. 호세아 2:21-22에서 이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Jezreel)에 응하리라.” 아합의 궁정이 있었던 이스르엘은 우상숭배와 황폐한 곳이었으나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위로부터 내려와 회복이 되는 말씀입니다. 응한다라는 것은 응답(Respond, Answer)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드려져야 그 기도가 하늘의 보좌에 응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응하시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스르엘에 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먼저 하늘을 향해야 합니다. 이것이 상향적 기도입니다.
B. 하향적 기도(Downward Prayer)입니다(마 6:10-13)
하나님을 향한 상향적 기도가 주기도문의 상반부라면, 하반부는 연약한 인간을 위한 하향적 기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양식, 용서, 시험, 악에서 구원 등의 인간의 필요를 위한 하나님의 응하심을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상향적 기도와 하향적 기도의 균형(Balance)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올려드리는 상향적 기도는 하향적 기도의 오프닝(Opening)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먼저 기도의 화살을 쏘아 올리고, 하나님의 보좌가 움직여 하향적 기도로 응합니다. 땅이 아니라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의 하반부는 다시 하나님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기도로 마무리가 됩니다(13b).
Ⅲ. 주기도문은 기도 응답의 조건으로 기도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없애도록 말씀하십니다(마 6:14-15)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막는 방해요소로 「용서하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을 말씀하십니다. 남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는 강팍함은 기도의 응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는 완벽하다는 착각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마 18:21-35). 갚을 수 없는 일만 달란트(수조원 이상의 천문학적 액수)를 탕감 받는 죄인이 내게 죄지은 사람의 일백 데나리온(갚을 수 있는 적은 액수)을 탕감해 주지 않았습니다. 도무지 갚을 수 없는 나의 죄 값을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은 우리가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내게 아픔을 준 형제의 작은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평생 영혼의 감옥에서 지내게 될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응어리, 복수심이 기도를 막습니다. 주기도문은 용서하지 않는 인간의 마음이 기도의 방해물인 것을 지적합니다.
결론// 사람에게 보이는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 비인격적이고 인위적인 기도를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통해 알려주신 것처럼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모든 것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먼저 진실하게 인격적으로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림으로 응답받는 기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요약: 이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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