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노창영 목사 -
종말성도의 준비품목(Ⅲ):지극히 작은 자 섬김
본문 말씀 : 마태복음 25:31-46
주일설교요약
제목: 종말성도의 준비품목(Ⅲ): 지극히 작은 자 섬김
본문: 마태복음 25:31-46
2026. 2. 8(주일)
설교자: 노창영 목사
서론// 종말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신화적 상징으로 이해하거나 무감각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으나 성경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인류 역사상 가장 확실하고 사실적인 사건으로 선포합니다. 오늘은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하여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말씀을 하려고 합니다.
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모습에 대하여(25:31-32a)
A. 인자는 자기영광으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림하실 때 「자기 영광(In His Glory)」으로 임하십니다. 성경적 맥락에서 ‘영광’의 본질은 ‘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빛의 본체이시며 모든 피조된 빛들의 근원이십니다. 인간들이 정동진의 해돋이나 자기장이 충만하다는 미국 애리조나의 세도나 국립공원 같은 특정 장소의 일출을 보며 복을 비는 행위는 태양을 바라보는 행동입니다. 이집트의 태양 숭배, 일본의 창조신으로 태양을 뜻하는 천조대신 숭배같은 태양숭배적 종교관은 본체이신 그리스도의 빛이 투영된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천국에서는 주님 자신이 빛이시기에 전기가 필요 없습니다. 또한 인류 중 어떤 성자, 성인, 위인보다도 가장 큰 자라 칭함받은 세례 요한조차도 빛이 아닌 빛의 증거자였습니다(요1:6-7). 재림의 예수님께서는 어떤 피조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빛과 영광으로 오십니다.
B. 인자는 모든 천사와 함께 오십니다
초림의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비천하게 오셨다면 재림 때의 예수님께서는 백마를 타신 왕이요 우주의 통치자로서 모든 천사를 대동하고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것입니다. 하늘의 모든 천사들은 그들의 업무를 멈추고 예수님의 들러리가 되어 영광의 주님의 오심을 찬송할 것입니다. 세상의 열병식을 보시기 바랍니다. 러시아의 전승절(Victory Day), 북한의 태양절, 중국의 국경절 행사 때에는 신무기를 과시하며 대규모 열병식등을 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 재림은 세상의 장엄한 열병식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장엄한 영광의 임재가 될 것입니다.
C. 인자는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그의 영광의 보좌(The Throne of His Glory)」에 앉으십니다. 우주 최고의 대왕의 자리에 좌정하실 것입니다. 지상의 모든 위대한 권력자들은 그 보좌에서 내려와 왕의 왕되신 예수님의 보좌앞에 엎드릴 것입니다. 역사상 화려함을 자랑했던 영국의 에드워드 왕의 대관식 의자, 870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러시아 로마노프 황제의 보좌, 중국의 황제용상, 인도의 공작좌, 이란의 태양좌, 로마 제국을 본떠 독수리와 월계수 문양을 새긴 나폴레옹의 보좌도 예수님의 보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스바 여왕이 감탄했던 솔로몬의 금과 상아로 만들어진 보좌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 보좌 앞에서는 초라할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자는 예외 없이 예수님의 보좌 앞에 무릎 꿇고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Ⅱ. 다시 오실 예수님께서 하실 일(25:32-34, 41)
A. 모든 민족을 모으시고 각각 분별하심(25:31a)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모든 민족들을 예외없이 다 불러 모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심판의 보좌에서 분별하실 것입니다. 왕족이나 서민, 부자나 가난한 자, 배운자와 못 배운자, 높은 자와 낮은 자, 귀한 자와 천한 자, 그리고 인종과 계급에 관계없이 모두를 불러 모으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B. 이 분별은 최후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25:32b-34, 41, 46)
1. 이 분별은 양과 염소를 분별함과 같습니다(25:32b-33)
예수님께서는 재림 하실 때에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듯 인류를 분별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양은 보통 흰색을 띠며 목자를 의지하는 군집성이 강합니다. 날카로운 송곳니(윗이빨) 없이 어금니로만 풀을 뜯는 순한 성품을 지녔으며,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만 풀을 뜯어먹고 거주합니다. 또한 털이 두꺼워 추위와 습도에 강합니다. 반면에 염소는 주로 검은색이며 독립적이고 공격적입니다. 바위, 절벽, 건조지대에서도 잘 생존합니다. 울타리를 넘어 험지로 다니며 관목과 나무뿌리까지 먹어 치워 환경을 초토화하는 파괴적 생존 본능을 지닙니다. 성경적으로 오른편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를, 왼편은 수치와 연약함을 상징하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명확히 분리하십니다.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오른편의 양들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자들을, 왼편의 염소들은 영벌로 들어가는 자들을 보여줍니다.
2. 이 분별은 영원한 분별입니다(25:34, 41, 46)
인간의 재판은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의 3심제를 거쳐 헌법재판소나 국제사법재판소까지 호소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재판은 우주의 최후 재판입니다. 오른편의 영생과 왼편의 영벌 사이에는 어떠한 중간 지대나 타협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재판은 영원한 최후의 심판입니다.
3. 어느 쪽에 설 것인가에 대한 결단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매달렸던 두 강도는 구원을 받거나 받지 못한 인류의 두 부류를 대표합니다. 끝까지 순간적인 죽음의 모면을 위하여 자기 의를 주장하며 예수님을 욕하고 비방한 강도와 달리, 다른 편의 강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예수님의 무죄함과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태도와 예수님의 구원을 갈망하는 기도를 통하여 낙원을 약속받았습니다. 창세기의 요셉 앞의 술맡은 관원장과 떡맡은 관원장, 시편 1편의 의인과 악인, 창세기 4장의 불경건의 족보와 창세기 5장의 경건의 족보처럼 인류는 결국 두 길로 나뉘게 됩니다. 오른편의 의인들에게는 복되도다라고 하시며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셨고, 왼편의 사람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 하시면서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하십니다(25:34, 41). 의인은 영생으로, 악인들은 영벌로 들어갑니다(25:46).
Ⅲ. 영생으로 들어가는 조건(25:35-40, 42-45)
A. 이 비유는 선행과 공로주의를 말씀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선행 구원론’을 배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른편의 사람들에게 예수님 자신이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벗고, 병들고, 옥에 있을 때 너희가 돌봐 주었다고 하셨으나, 이 오른편의 의인들은 "언제 우리가 주님을 돌보아 드렸습니까?"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선행을 기억조차 못 하는 ‘무익한 종’의 자세를 보입니다. 이는 므비보셋이 고백했던 ‘죽은 개’와 같은 마음으로, 오직 은혜에 압도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겸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의와 공로가 없는 자들에게 은혜와 축복의 영생을 주십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왼편의 사람들에게 예수님 자신이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벗고,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 돌아보지 아니하였다고 하시니 왼편의 사람들은 "우리가 그때마다 주님을 공궤하였는데 왜 그러십니까?"라며 자신들의 행위를 나타내고 자기 의를 내세웁니다. 구원은 인간의 선행이나 업적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대한 겸손한 믿음에 있습니다.
B. 이 비유는 박애주의적 선행보다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영접하라는 메시지로 받아야 합니다(25:40, 45)
레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도 계신다』는 가난한 민중을 향한 보편적 박애주의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구두수선공 마틴이 만나서 돌보아준 거리의 청소부, 춥고 배고픈 여인, 도둑질하다 붙잡힌 소년이 바로 예수님이셨다는 스토리는 인본주의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신학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본문의 ‘지극히 작은 자’는 단순히 사회적 약자를 넘어, ‘성육신하셔서 고난받은 인간들과 함께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제자들’을 의미합니다(Joakin Jeremias, D.A.Carson, R.T.France, Herman Ridderbos). 예수님께서는 주리고 목마르며 옥에 갇힌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작은 자를 대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과 그 사자들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40에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위하여 보냄받은 제자를 영접하는 것이 이 본문의 「지극히 작은자에게 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냄받은 의인과 선지자와 제자들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마10:41-42).
결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심판의 날에 염소처럼 왼편에 서서 영벌에 처하는 비극적인 영혼이 단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양과 염소사이의 문턱을 넘어서 예수님을 영접하여 오른편의 양처럼 영원히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요약: 이동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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