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손호송 목사 -
얼굴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
본문 말씀 : 사도행전 6:15,7:54-60
● 주일설교요약
제목: 얼굴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 본문: 사도행전 6:15, 7:54~60 설교자:손호송 목사
서론
법정에 서게 된 사람의 표정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전 모독, 율법 거역, 하나님을 모욕했다는 죄명으로 무시무시한 권력과 힘을 가진 산헤드린 앞에 섰음에도 그는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본 사람은 다름 아닌 산헤드린 공회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기도 했지만, 스데반이 천사의 마음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천사처럼 밝고 빛나고 은혜가 넘치게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들의 얼굴을 보며 천사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본론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지만, 산헤드린의 사람들의 얼굴은 어떠했을지 생각해 봅시다. 사람을 죽이려고 작정하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안색이 변함이 어찜이뇨.” 하나님께서는 그 안색의 변함을 보시고 경고의 말씀을 주셨지만 결국 가인은 아벨을 죽였습니다.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안색이 변한 것이 아니라 평안과 기쁨이 넘칩니다.
세상을 초월한 천사는 어떤 존재일까요? 우리는 착한 사람들에게 ‘천사와 같다’라고 말을 합니다. 천사는 선하고 착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자입니다. 기쁜 소식과 용기를 주는 복된 소식을 전하는 존재입니다. 천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합니다. 또한 천사는 믿음의 온전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천사의 모습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천사의 모습, 천사의 얼굴과 대조적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에 대해 7장 51절에서는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거스르고, 선지자를 핍박하였고, 예언한 의인을 잡아 살인한 자이며,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는 자들입니다.(51~53절) 스데반의 설교에서는 직접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역사적 변증을 통해 그들이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죽인 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그 설교의 결과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열매인 사도 바울을 낳는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봐도 천사의 얼굴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 역사하심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신학의 출발점, 그의 신학의 내용과 방법은 스데반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스데반은 얼굴로 바울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우리는 스데반의 얼굴, 스데반의 모습은 어떠했기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가장 먼저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스데반이라는 이름은 면류관, 왕관, 화관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사람(6:8)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예수님과 닮은 삶을 살았습니다.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은 것, 거짓 증인들이 있는 것, 경건한 자들에 의해 장사 지냄을 받는 것이 닮았습니다. 무엇보다 스데반이 죽음 앞에서 올려드린 기도는 십자가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와 너무 닮았습니다. 생명을 연장이나 원망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기도, 죄인을 용서하는 사랑의 기도였습니다. 스데반은 이미 죽기 전에 순교의 삶을 산 것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옛사람을 죽이는 생활 속의 순교자 삶의 순교자로 살았습니다. 그가 죽음 앞에 있는 때, 그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을 때와 동일한 하늘이 열린 것을 보았고, 인자가 온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그 상황에서 이것을 볼 수 있었을까요? 바로 하늘을 우러러 보았기 때문입니다. 순교는 자신의 삶을 예수님과 같이 피로서 보증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스데반의 모습은 성령으로 충만한 모습입니다. 스데반이 죽고 나서 기독교는 핍박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로 유다와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고, 사도 중심의 복음 전도에서 평신도 중심의 복음 전도로 복음 전도의 주체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계략이 무너지고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핍박으로 복음은 더 멀리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은 실로 신묘막측한 것입니다. 당시 경건한 사람을 천사와 같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지배를 받은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빛의 얼굴을 다시 세상에 비추어 복음을 전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최초의 이방인 선교는 바울보다 앞서 스데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데반은 진리의 말씀을 확실히 믿고 인내한 모습입니다. 그는 사도행전에서 가장 긴 설교를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변증하며 고소하는 자들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성전과 장막, 그리고 율법 이전에 주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언약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찔리기는 했지만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찔리는 것과 깨닫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마음과 귀의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하나님과의 언약 백성에서 끊어지는 형벌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데반은 아브라함에서 바로 요셉으로 넘어가면서 설교하는데, 이는 가장 고난받는 인물이 요셉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셉과 예수님이 닮은 것은 나그네 삶을 살았고, 형제들로부터 핍박과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심을 신뢰하며 믿는 요셉과 예수님은 승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스데반 역시 그런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승리의 삶을 산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서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갈 바를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씀하신 언약은 430년 뒤에나 이루어졌습니다.(갈3:17)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그 성취를 보지 못했음에도 믿음으로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의로 여겨 주신 것입니다. 스데반은 역시 진리에 대한 확실한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고 인내하며 승리한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론
마태복음 8장 12절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나라의 본 자손들이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울며 이를 간다는 말입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하신 말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땅에 있는 것들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늘을 바라보며, 믿음의 눈으로 소망을 가지며 나아갔습니다. 그것이 그의 얼굴을 천사의 얼굴처럼 보이게 했으며, 그것으로 자신이 승리하는 삶을 완성한 것뿐만 아니라 자기의 얼굴과 모습, 그리고 삶의 태도를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들 또한 스데반과 같이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믿음의 사람,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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