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노창영 목사 -
죽음의 신학 부활의 신학
본문 말씀 : 전도서 12:7, 로마서 5:12-14, 히브리서 2:14-15, 고린도전서 15:22-24,42-44,51-58
● 주일설교요약
제목: 죽음의 신학 부활의 신학
본문: 로마서 5:12~14, 전도서 12:7, 히브리서 2:14~15, 고린도전서 15:22~24, 42~44, 51~58
설교자: 노창영 목사
서론//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침 등굣길에 하얀 버스 안으로 흰 보자기 씌운 긴 나무 상자를 흰 옷 입은 사람들이 옮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저 것은 무서운 것이라고 느꼈고 저 상자 안에 무서운 죽은 자가 있다고 감지하였습니다. 제가 시신을 관에 담아 운구차로 옮기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것이 무서워서 오금이 저렸고 그 다음날 그 길로 안 가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무서움과 공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 죽음의 문제와 인간의 궁극적인 사후 문제를 다룹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유일한 소망과 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부활 주일을 맞이하여 단순히 절기를 기념하는 것을 넘어서 성경이 가르치는 「죽음의 신학」과 「부활의 신학」에 대하여 설교하겠습니다.
Ⅰ. 죽음의 신학에 대하여
A. 죽음의 정의
1. 의학적 생물학적 죽음
죽음은 생명체가 활동을 중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음은 현대 의학적으로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심폐사로 심장과 폐의 기능이 정지되고 신체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뇌사로 뇌 전체 특히 뇌간의 기능이 멈추는 상태를 말하며 현대의학은 이를 무의식 상태로 보고 장기이식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처럼 현대의학에서 죽음은 몸이 생명체로서 기능을 못하는 상태입니다. 또한 생물학적으로는 죽음은 몸의 노화, DNA의 손상 등에 의한 생명활동의 종식을 의미합니다.
2. 신학적 정의
기독교 신학이나 성경 신학에서는 죽음을 의학적 생물학적인 측면 이상의 영적인 측면으로 통찰하는데 신학적으로 죽음은 3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① 육체의 죽음(Physical Death)
인간은 흙과 하나님의 영(생기)이 결합 된 존재입니다(창2:7). 죽음이란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이별의 사건을 의미하며, 육체는 땅(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됩니다(전12:7). 이때 믿는 자의 영혼은 잠들지 않고 바로 주님과 함께 있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의 강도에게 약속하신 「낙원」(눅23:43)과 이 땅에서 살기보다는 주님과 함께 있기를 갈망하는 바울의 고백(빌1:23)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는 땅의 흙속에 있다가 예수님 재림 하실 때 일어나(몸의 부활) 영혼과 함께 결합하게 됩니다(살전4:13~18, 고전15:51).
② 영적인 죽음(Spiritual Death)
이는 몸은 살아 움직이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뜻합니다. 이같이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몸만 살아있지 영적으로는 죽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지 못한 죄인들은 성경적으로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엡2:1~3)입니다. 이는 마치 몸은 죽었으나 살아 움직이는 영적인 좀비(Zombie)와 같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엡4:18~19)가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적 세계를 모른 채 살아가는 자연인, 무할례자들입니다.
③ 둘째 사망
이는 사망한 자들이 마지막 심판 후 불못에 던져지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의 단계입니다(계20:13~15). 죽은 자들이 들어갈 두 번째 사망으로 마지막 단절의 상태입니다.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John Owen)은 둘째 사망은 사람의 영혼이 영원히 소멸되는 것(영혼불멸설)이 아니라 하나님께 버림받은 상태에서 의식을 가지고 형벌이 영원히 지속하는 상태로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영원한 형벌이라고 했습니다.
B. 죽음의 원인
의학적 생물학적 죽음은 암, 폐렴, 패혈증과 같은 질병, 각종 병원균(흑사병, 코로나 등) 등 에 의한 감염, DNA 손상으로 인한 노화, 혹은 각종 사고(교통사고, 안전사고, 전쟁 등)나 오염(환경, 약물 등)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볼 때 죽음의 근본 원인은 죄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며 죄지은 자는 죄의 종이 되어 사망에 이른다(롬6:16)고 말씀합니다.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로 인해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롬5:12~14).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성을 유전받아서 태어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라는 죄의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창2~3장)입니다.
C. 죽음이 인간에게 주는 치명적인 영향(Impact)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에 대한 무서움(Phobia=공포증, 두려움)을 갖습니다(히2:14~15). 이는 죄지은 모든 인간의 본능적 감각입니다. 마귀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입니다. 마귀는 죽음이라는 인간 생명의 소멸을 일평생 생각나게 함으로 인간이 죽음의 공포에 매여 사망의 종노릇을 하며 살아가게 만듭니다. 인간은 죽음에 매여서 평생을 마귀에게 조종당하고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죽음과 공포의 딜레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는 바로 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를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시키기 위함입니다.
Ⅱ. 부활의 신학에 대하여
A. 부활의 정의
1. 부활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
부활은 죽었던 존재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은 종종 죽음에 근접했던 사람들이 겪는 임사체험(臨死體驗, Near-Death Experience)이나 뇌의 환각작용 혹은 잠시 숨이 멎었다 깨어나는 가사 상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야이로의 딸의 부활 사건,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부활 사건, 그리고 죽은 지 사흘이 지나 시신에서 냄새가 났던 나사로의 부활 사건은 임사 상태나 가사 상태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이 완전히 죽었다가 살아난 부활입니다. 부활은 생물학적 소멸을 뚫고 생명으로 나오는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입니다.
2. 신학적인 부활의 정의
성경이 말하는 부활의 신학적 정의는 다음과 같이 두 측면이 있습니다(고전15:51~52).
1) 연속성(Continuity)
하나님에 의해 다시 살아난 자는 부활하여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이전의 존재와 동일합니다. 부활전의 옛 사람과 부활한 이후의 새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같은 사람입니다. 변화산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즉각 알아본 것처럼 부활 후에도 서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부활이 주는 연속성입니다.
2) 비연속성(Discontinuity)
그러나 부활한 사람의 몸은 이전의 육적인 한계를 벗어난 변화된 몸(Transformation)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닫힌 문을 통과하신 것처럼 제한된 공간을 초월하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물리적 제약에 갇히지 않는 신령한 상태로 탈바꿈한 몸입니다. 여기에 부활한 사람과 이전의 사람의 비연속성이 있습니다. 부활 전의 옛 사람과 부활 후의 새 사람은 같은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B. 부활의 상태에 대하여(고전15:42~44)
1. 육의 몸에 대하여(Natural Body)
이 땅의 우리 몸은 흙에 속한, 땅에 속한 육의 몸입니다. 이 몸은 ①썩을 것(Corruption, Perishable)입니다. 노화되면서 썩어가고 부패되고 냄새가 납니다. 그리고 ②욕된 것(Dishonor)입니다. 이는 아름답고 존경할 만한 것이 없고 정욕, 죄악, 욕심, 자기 죄성을 따라 움직이는 몸입니다. 마지막으로 ③약한 것(Weakness)입니다. 인간의 몸은 나이들면서 병들고, 아프고, 깨지고, 부서지는 약한 몸입니다.
2. 영의 몸(신령한 몸, Spiritual Body)에 대하여
신령한 몸은 하늘에 속한 몸, 부활의 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과 같은 몸입니다(고전15:42~44). 이 몸은 ①썩을 몸이 아니라 썩지 않을 몸(Incorruption, Imperishable)입니다. 썩거나 부패하는 몸이 아닙니다. 완전한 몸입니다. 또한 ②이는 죄짓고 악을 행하는 욕된 몸이 아닙니다. 죄와 악을 완전히 떠난 영광(Glory)과 거룩의 몸입니다. 마지막으로 ③이는 약한 몸이 아닙니다. 각종 질병과 노화로 병들고 깨어지는 몸이 아니라 강하고(Strong) 능력 있는(Power) 몸입니다. 부활의 몸은 이같이 완전하고 썩지 않고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강한 몸입니다.
C. 부활의 순서(고전15:22~24)
부활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예수님께 붙어 있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그 분 안에 거할 때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부활에 동참자가 됩니다. 먼저 예수님이시요 그 다음에 우리들입니다.
D. 부활의 능력(고전 15:51~58)
1. 엘리사의 뼈의 능력(왕하 13:20~21)
구약 열왕기하에 보면 한 번은 모압의 도적들이 이스라엘 지경을 노략하고 침범했을 때 그 지역 사람들이 죽은 사람의 시체를 장사지내다가 급하게 그 시체를 우연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무덤에 던진 사건이 기록됩니다. 그 때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회생하여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엘리사의 뼈는 한 사람의 죽은 시체를 회생시켜 일어나게 합니다. 그러나 위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이 역사하면 예수님의 말씀과 손이 닿는 곳마다 부활과 새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으로 야이로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나사로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는 우리들의 부활의 예고편입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부활의 능력으로 오시는 마지막 날에 모든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대우주적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고전15:55~58)
바울의 부활 신학의 절정은 사망을 깨뜨리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15:55~56)”고 당당히 선포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고 사망을 깨뜨리셨습니다. 마귀는 사망과 죄를 통해 우리를 공격하여 무너뜨리려 하지만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그 사망의 능력은 무너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망을 삼키고 이긴 확정적인 승리입니다.
결론// 부활의 권능을 믿는 성도는 더 이상 죽음의 종노릇을 하며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실의 염려와 걱정, 두려움과 죽음의 위협이 다가올지라도 부활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주 안에서 행하는 우리의 모든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으며 마지막 날 우리는 찬란한 부활의 영광 속에서 최후 승리자로 서게 될 것입니다(고전15:57~58).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소망 안에서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침체하게 하고 어둡게 하고 두렵게 하고 종으로 만드는 마귀와 죄와 사망을 깨뜨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믿음과 소망으로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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