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2026-03-29 12:50:07

노창영 목사
십자가에 못박힌 4가지

본문 말씀 : 갈라디아서 2:20,3:1-3,5:24-26,6:14

서론//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중심은 십자가입니다. 기독교의 모든 목적과 가치는 십자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교회는 십자가를 증거하는 곳이며, 성도는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을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십자가형은 인간이 고안해 낸 가장 잔인한 사형 방법으로, 양손과 발목에 대못을 박아 몸 안의 피를 모두 쏟게 하여 서서히 죽게 만드는 형벌입니다. 법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이미 죽은 자로 인정되는 법적 선언과 같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서 실제로 죽기까지는 최소 6시간 내지 24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힌 그 순간부터 그는 이미 죽은 자로 간주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그 순간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이 끝난 죽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십자가에서 못박힘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내 인생이 마칠때까지 십자가에서 죽은 자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이 죽음의 선언 이후 육체적 종말을 맞이할 때까지의 모든 시간은 십자가에 죽은 자로서 걸어가는 과정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4가지로 말씀합니다. 오늘은 십자가에 못 박힌 4가지에 대하여 상고하겠습니다.

 

. (갈라디아서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기독교란 하나님 없는 무할례자, 곧 자연인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자기 죽음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 곧 자아(Ego)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은 자아 추구, 자기 행복, 자기 성공, 자기 성취가 아닙니다. 자기 죽음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막을 보면 바깥뜰에 번제단이 서 있습니다. 성막 동쪽 문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바로 놋으로 만들어진 번제단(The Broze Altar)입니다. 놋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며, 그 어떤 동물도 이 곳에서 죽지 않고서는 성소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레위기 1장에 기록된 번제 제사법에 따라 소, , 염소, 비둘기 같은 모든 제물은 잡아 죽여서 피를 쏟고 각을 떠서(해체) 고기, 기름, 내장을 모든 불로 태워서 하나님께 화제로 드립니다. 이 번제단을 통과해야만 하나님의 성소를 들어가듯이 우리 신앙도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죽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목회가 너무 힘들어 늙은 선배 목사를 찾아간 한 젊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 젊은 목사는 목회가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늙은 목사에게 목회성공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늙은 목사는 그 젊은 목사에게 뒷동산에 있는 묘지의 무덤 앞에 가서 그 안에 누워있는 시체를 향해 마음껏 저주하고 욕을 퍼붓고 오라고 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젊은 목사는 그대로 하고 돌아왔습니다. 늙은 목사는 그 시체가 무엇이라고 대답하던가라고 물으니 젊은 목사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늙은 목사는 젊은 목사에게 이번에는 그 시체에게 다시 가서 온갖 찬양과 칭찬을 해주고 오라고 했습니다. 젊은 목사는 그 명령대로 행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 젊은 목사에게 늙은 목사는 물었습니다. "그 시체가 뭐라고 대답하던가?" 젊은 목사가 역시 대답하였습니다.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이때 늙은 목사는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일세. 칭찬과 저주에도 어떤 대답과 반응도 하지 않은 시체처럼 목회란 자기 죽음일세. 어떤 외부의 칭찬이나 저주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것이 죽음이며 목회의 비결일세라고 말했습니다. 목회뿐만 아니라 모든 믿음생활은 자기 죽음에서 시작됩니다.

오래 전에 미군 특수부대가 중동 지역에 파견되었습니다. 그 부대의 내무반에는 질이 안좋고 평판이 나쁜 포악한 성품의 선임하사 하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신병이 들어오자 그 선임하사는 우중에 훈련하고 돌아와 진흙이 잔뜩 묻은 군화를 신병의 머리에 던졌고, 아무 반응이 없자 나머지 한쪽도 던졌습니다. 그러나 신병은 아무 말 없이 그 상황을 견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선임하사가 일어났을 때 그의 머리맡에는 진흙이 깨끗하게 닦여 광이 나는 군화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 신병이 공격적인 행동을 사랑으로 되돌려 준 것이었습니다. 신병의 이러한 죽은 자와 같은 인내와 사랑은 결국 선임하사를 감동시켜 예수님을 영접하게 했습니다. 내가 죽어야 영혼이 살고 내가 죽어야 가정이 살고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살고 내가 죽어야 공동체가 삽니다. 십자가에 죽은 것은 바로 입니다.

. 정과 욕심 (갈라디아서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5:24)

제가 초등학교 때 동네 뒷산에 가서 뱀을 잡곤 했는데 뱀을 잡을 때마다 머리부터 깨버렸습니다. 뱀의 독과 힘은 머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해도 뱀의 몸통과 꼬리는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의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선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는 여전히 뱀의 몸통과 꼬리처럼 꿈틀거리는 죄의 본성의 누룩이 남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과 욕심입니다. 바울은 갈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삽자가에 못박혔다고 말하고, 이어 갈5:24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말합니다. 자아가 죽어도 끝까지 살아 꿈틀거리는 뱀의 몸통과 꼬리 같은 것이 바로 정과 욕심입니다. 이처럼 아직 살아있는 정(, Passions, παθήμασιν, 파데마신, from παθήμα, 정욕의 의미)과 욕심(欲心, Lusts, Covet, Desire, ἐπιθυμας, 에피두미아스, from ἐπιθυμα, 탐심, 음욕, 욕심, 욕망)을 육체의 본성(Sinful Nature, σάρξ)과 같이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나는 아말렉 족속은 이같이 우리 안에 살아 남아있는 죄의 본성을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아말렉 족속은 끈질기게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존재입니다. 곤하고 약할때마다 와서 뒷통수를 칩니다. 아말렉은 우리 안에 끊이지 않고 살아있는 죄의 본성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이 르비딤에서 물이 없어 피곤할 때 아말렉이 갑자기 쳐들어 왔고 여호수아가 나아가 아말렉을 쳐서 물리쳤는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대대로 진멸하라고 명하셨습니다(17:13~16). 아말렉은 우리가 피곤할 때 공격합니다.

다윗이 사울왕을 피하여 도망 다닐 때 전쟁을 위하여 시글락성을 비운 사이에 아말렉이 시글락을 침노하여 다윗과 그의 부하들의 가족들을 다 잡아갔으나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되찾아옵니다(삼상 30:1~19). 아말렉은 우리가 약할 때 공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대대로 원수인 아말렉을 남김없이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25:17~19, 삼상 15:13).

다윗시대로부터 약 500년이상이 지나서 페르시아가 세계를 지배할 때 아말렉의 후예인 아각 사람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의 신임을 얻어 권력을 쥐고 모든 유대인을 몰살하려 했습니다. 아직도 아말렉이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정과 욕심은 아말렉과 같아서 그 뿌리가 잘 뽑히지 않습니다.

사막의 수도원에서 수행하던 한 수도원장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날 기도하고 나오는데 그의 제자로부터 그의 동생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당시 매우 영향력 있는 자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그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하면서 분노와 시기심에 휩싸였습니다. 그토록 기도와 금식에 전념했던 그도 내면 깊숙이 숨어있던 탐욕과 욕심의 꿈틀거림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은 그에게 금옥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그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아브라함 내면의 가장 깊은 인간적인 정()을 끊어내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칼을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이삭 대신 수양을 대신 번제물로 준비해주셨습니다(22:1~19).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바로 이 육신의 정입니다. 우리는 이 정과 욕심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이 외에도 십자가에 못 박혀야 될 다양한 종류의 정과 욕심들이 있습니다.

양성적인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 들인데 자기 욕심, 자기 자랑, 자기 과시, 교만, 분노, 무정, 무자비, 수근거림, 비방과 같은 육체적 정과 욕심들입니다. 음성적인 것은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것들로 자기 멸시, 자기 학대, 자기 연민, 자기 사랑, 시기, 질투, 탐심, 음욕, 원한, 응어리, 명예욕 등 끊임없이 우리를 지배하려 드는 잠재적인 죄성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못박아야 할 목록들입니다.

. 세상 (갈라디아서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십자가에 대하여 그러하니라(6:14)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은 헬라어로 코스모스(κσμος)이며, 이는 본래 "질서, 정돈, 배열"을 뜻합니다.

성경에 보면 세상(코스모스)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1:10, 17:24)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과 우주 만물을 의미합니다. 모든 인간, 구원의 대상(3:16)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실 만큼 사랑하시는 인류 전체를 뜻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세계(요일2:15~17, 15:18)를 뜻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믿는 자들을 미워하며 무너뜨리려 하는 타락한 세속적 가치관과 체계입니다. 우리가 못 박아야 할 세상은 바로 이 세 번째 의미의 세상입니다.

이 단어에서 "꾸미다, 장식하다"라는 뜻의 κοσμητικός(코스메티코스)가 나왔고, 여기서 오늘날의 화장품(Cosmetic)이라는 말이 파생되었습니다. , 세상은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고 화장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온 것은 겉과 외모를 추구하는 육신과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사랑하면 안됩니다(요일2:15~17). 세상은 나에 대하여, 나는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기 때문입니다.

시 에스 루이스(C.S. Lewis)천국과 지옥의 이혼(The Great Divorce)이 라 는 책 을 썼 습 니 다 . 이 책은 주인공이 지옥에서 버스를 타고 천국 가장자리까지가는 여행을 우화로 그려주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천국과 지옥은 함께 할 수 없는 곳임을 말씀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이혼해야 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세상과 영원히 이혼해야 합니다. 바울은 세상과 나 사이에 십자가가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세상을 십자가 저 편에 못박아 거기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세상의 유행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2:1~3) 십자가 저 편에 세상을 못 박아야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 (3: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3:1)

우리가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는 모든 힘의 뿌리와 근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내가 죽고 정욕과 욕심이 죽고, 세상이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성령님께서 오셔서 나와 정과 욕심,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죽는 능력이 역사하며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믿음의 은혜를 얻게 됩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결론 //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붙들 때 성령님의 능력이 임하셔서 죽음의 신학으로 살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십자가를 붙들고 성령님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칩니다(3: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죽음의 신학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요약: 김환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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