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노창영 목사 -
슬픔을 넘어 확신으로
본문 말씀 : 누가복음 24:13-35
● 주일설교요약
제목: 슬픔을 넘어 확신으로 본문: 누가복음 24:13~35 설교자: 노창영 목사
서론//
프랑스 위그노(개혁교회) 목사이고 신학자이며 상원의원이었던 에드몽 드 프레쌍세(Edmond De Pressens)는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은 교회의 요람이 되어왔다(The Empty tomb of Christ has been the cradle of the church)”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교회의 탄생과 존재의 기초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 위에 세워졌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영국 켄터베리 대주교를 지낸 마이클 램지(Michael Ramsey)도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없다(No Resurrection, No Christianity)”라고 말하며 부활이 기독교의 본질임을 강조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이나 전파하는 것이 다 헛것이라고 말하였고 만약 부활의 소망이 없고 이생의 삶이 전부라면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라고 말씀했습니다(고전15:12~19).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부활하셨기에 기독교에는 참된 소망이 있습니다.
Ⅰ. 예수님의 부활의 현현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이후에 ①게바 ②열두 제자 ③500여 형제 ④야고보, 그리고 ⑤바울 자신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고전15:5~8). 복음서에는 ①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마28:8~10, 막16:9) ②도마가 없을 때 열두 제자들(요20:19~23) ③도마가 있을 때 열두 제자들(요20:24~29) ④시몬 베드로(눅24:34) ⑤갈릴리 바닷가의 일곱제자(요21:1~14) ⑥엠마오 길의 두 제자(막16:12~13, 눅 24:13~35)에게 나타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필요에 따라 제자들의 유익과 영적 가르침을 위해 개인, 두 사람, 일곱 사람, 열 두 사람, 500여 명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나타나심을 통해 개인적인 믿음을 만져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베드로, 야고보, 바울에게도 그리하셨고 집단으로 있을 때도 도마나 베드로는 개인적으로 만져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의심과 불소망으로 흔들리던 제자들을 만나 그들을 만지시고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오늘은 눅24:13~35에 기록된 엠마오 길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고 동행하신 내용에 초점을 두고 설교하려고 합니다.
Ⅱ. 두 제자의 슬픔(눅24:13~27)
A. 엠마오 길의 두 제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안식 후 첫 날) 오후에 두 제자(글로바와 익명의 다른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라는 마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욥바로 가는 길, 즉 북서쪽으로 25리(60 스타디아, 11.1Km) 떨어진 곳으로 지금의 엘 쿠베이베(El-Qubeibe)로 추정됩니다. 그들이 엠마오에 도착한 시간이 날이 저문 시간인 것을 보아 오후 3시나 4시경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길을 걸으며 최근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들(예수님의 죽음, 부활의 소문들 등)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셨음에도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셔 예수님인 줄 모르고 함께 대화하며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엠마오 길의 두 제자의 길은 낙담과 슬픔과 절망과 회의의 길이었습니다.
B. 두 제자의 슬픔의 두 가지 이유(눅24:17, 19~27)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 두 제자에게 그들이 이야기한 내용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니 두 사람은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섰습니다. 슬픈 빛은 스쿠드로포이(σκυθρωποί=슬픈+표정)로 두 제자는 슬프고, 풀이 죽고, 기력이 빠진 상태로 걸어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들의 슬픔은 두 가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기대에 대한 실망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이 믿음 생활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실망감은 하나님과 교회에 대하여 기대가 지나치게 컸을 때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발생합니다.
제자들의 예수님에 대한 기대는 대단했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는 말(word, 천국복음, 가르침, 변론, 지혜)과 일(work, 기적과 이사, 축사, 치유, 부활)에 능하신 선지자셨으며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로 바라고 기대했습니다. 특히 로마 속국으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 억압, 경제적 빈곤, 인권의 탄압에서 벗어나 옛날 다윗 왕조 시대의 복원을 기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말과 일은 그들이 기대하였던 메시아 사역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사야 9:6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을 기묘자, 묘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으로 오시는 분, 정사와 권세를 메신 영원한 통치자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사람들과 관원들에게 사형 판결을 당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이 땅의 메시아 왕국을 기대하던 열두 제자들의 기대와 소망은 무너져 버렸습니다. 절망과 좌절, 낙심과 슬픔이 가득 찼습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서도 실족하거나 낙심한 영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만사형통의 복을 누려야 하는데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실망합니다. 하나님을 축복의 대상으로 이용하고 자기 뜻이 성취되지 않으면 모든 기대가 무너져 신앙의 동력을 잃고 주저앉게 되고 하나님을 떠나버립니다. 인간적인 기대치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였다가 그 동력이 무너지면 엠마오 길을 걸어가는 두 제자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2. 예수님 부활의 목격자들의 증언을 믿지 못함(눅24:22~24)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음을 확인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①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기타 다른 여인들(눅24:1~10), 그리고 ②여인들의 말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간 베드로와 요한(눅24:11~12, 요20:1~18)입니다. 그러나 이 두 제자는 예수님 무덤이 비어 있음을 확인하고 천사를 만난 여인들의 증언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엠마오 길의 두 제자에게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의심(doubt)과 불신(unbelief)은 다릅니다. 스코틀랜드의 목회자 헨리 드러먼드(Henry Drummond)는 이 두 차이를 구분했습니다. ①의심은 믿을 수 없는 것(can’t believe)입니다. 의지로 안 되는 것 즉 안 믿어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의심은 진리로 가는 전정한 탐구 과정일 수 있습니다. 의심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무신론자로 있다가 회심한 씨 에스 루이스(Clive Staples Lewis)나 의심 중에 진리를 발견한 존 번연(John Bunyan)이 대표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불신은 안믿는 것(would not believe)입니다. 스스로 의지적으로 마음을 완강하게 닫고 있는 것입니다. 의심은 정직한 것이지만 불신앙은 완고함입니다. 헨리 드러먼드가 말한 것처럼 의심은 빛(Light)을 찾지만 불신앙은 어둠(Darkness)을 찾습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두 제자의 태도는 의심 반 불신앙 반이 섞인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두 제자의 엠마오의 길은 낙심과 함께 의심과 불신앙으로 내려가는 슬픈 길이었습니다.
Ⅲ. 두 제자의 확신(눅24:15, 27, 30~35)
A. 부활을 믿는 변증적(소극적) 태도
20세기의 위대한 복음전도자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줄리우스 시저가 생존했단 역사와 알렉산더 대제가 33세에 죽었다는 역사적 증거보다 훨씬 더 많은 증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부활의 증거를 더 잘 정리한 사람이 리 스트로벨(Lee Strobel)입니다. 미국의 시카고 트리뷴지의 기자였던 그는 아내가 교회에 출석하면서 새 사람으로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회의적으로 보던 기독교에 대하여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이 때부터 예수님에 대하여 역사적, 의학적, 과학적 조사를 하게 됩니다. 그는 2년 동안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법정조사방법을 기초로하여 역사학자, 의사, 신학자들을 인터뷰하고 여러 문헌들을 연구 조사한 뒤에 부활의 사실성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가 「예수 사건(The Case for Christ)]에서 말씀한 부활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빈 무덤(Empty Tomb):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②목격자들의 증언(Eyewitness Testimony): 막달라 마리아부터 500여 형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목격자가 존재합니다(고전15장). ③제자들의 극적인 변화: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실 때 도망간 제자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고 부활을 증거하고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거짓을 위해 순교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④초대교회의 급성장: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충격적 메시지가 예루살렘에서 선포되고 급속히 확산되었습니다. ⑤회의론자들의 변화: 야고보(예수님의 형제, 초대교회 지도자, 야고보서의 저자, 행15장)와 핍박자 사도 바울이 극적으로 회심하여 변화되었습니다. ⑥여성증인들의 기록: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법적 효력이 없던 여성들을 첫 목격자로 기록한 것은 조작되지 않은 진실임을 보여줍니다. ⑦그 외에도 그는 예수님 시신의 도둑가설, 기절설, 가사설 등의 취약함을 지적합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자료들을 통해 부활은 단순한 신앙고백이 아니라 역사적 증거로 설명 가능한 가장 합리적 결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은 지적인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는 있지만 이것만으로 사람이 진정으로 변화되거나 부활을 확신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성경은 제자들이 어떻게 밤중에 엠마오에서 예루살렘으로 11.1km를 다시 되돌아 갈 수 있는 확신의 동력을 얻게 되었는지 실제적인 메시지를 보여줍니다.
B. 성경이 말씀하는 부활의 확신의 동력
- 동행하십니다(눅24:15~16)
슬픔과 낙심으로 엠마오 길로 내려가던 제자들의 부활의 확신의 동력은 예수님의 동행(Walking with them)입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고 동행하셨습니다. 비록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오시고 대화 속에 개입하시며 동행하셨습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 부활의 영, 하나님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롬8:9, 11, 14, 요14:16~20, 26~27).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우리 삶 속에 항상 동행하시며 우리를 붙드시는 확신의 첫 번째 근거가 되십니다.
2. 말씀을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고 마음을 뜨겁게 하십니다(눅24:26~27, 32, 45)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와 동행하시면서 ①모세와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예수님 자신)에 관한 것(예수님의 고난과 영광)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눅24:26~27). ②예수님께서 이같이 엠마오 길에서 두 제자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 제자들의 마음 속에는 카이오메네(καιομένη, Burning, 불타다), 즉 뜨거운 불같은 열망이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말씀으로 뜨겁게 하십니다. 여기서 힘이 생기고 확신이 생깁니다. 말씀이 우리 영혼에 부딪혀 들어올 때 비로소 확신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3. 떡을 가지사 축사하실 때(성찬나눔) 확신을 주십니다(눅24:29~31)
엠마오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날이 저물어 두 제자는 예수님을 엠마오의 어떤 집에 같이 유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셨고 함께 음식을 잡수실 때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니 그때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부활의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오병이어의 기적(마14:19), 칠병이어의 기적(마15:36), 그리고 유월절 만찬때의 (눅22:19) 모습이 겹쳐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모습이 그들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고 순간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떡을 떼어주시는 분이 바로 생명의 예수님이심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특히 성찬은 단순히 빵과 포도즙을 먹는 의식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을 통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실제적으로 경험케 합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은 청년 시절에 성찬을 받으면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성찬은 우리 마음에 십자가와 부활의 확신을 심어줍니다.
4. 간증들(Testimony)이 주는 확신이 있습니다(눅24:33~35)
엠마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 확신을 얻은 두 제자는 즉각적으로 엠마오를 떠나서 다시 11.1km를 되돌아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두 제자들은 ①열한 사도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을 때 예수님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는 간증을 들었고 ②두 제자도 길에서 된 일과 떡을 떼실 때 자기들에게 나타나심을 간증했습니다. 간증은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내가 눈으로 본 것, 내가 손으로 만진 것, 내 체험을 나누는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요일 1:1~2). 성도들이 서로 받은 은혜와 말씀과 기도의 응답을 나눌 때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배가 됩니다.
결론//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엠마오로 향하는 제자들과 같이 낙담과 불신앙과 슬픔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기대했던 일들이 무너지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우리는 낙심하고 의심하며 영적 침체의 길로 내려가곤 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슬픔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동행을 믿고, 뜨거운 말씀의 은혜를 받고, 성찬과 간증을 통해 부활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슬픔의 사람에서 기쁨의 사람으로, 의심의 사람에서 확신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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