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노창영 목사 -
사울왕(Ⅱ)
본문 말씀 : 사무엘상 10:1-6,22,25-27 11:1-7,14-15
제목:사울왕(Ⅱ)
본문:사무엘상 10:1.6,22, 25-27 11:1-7, 14-15
2026. 5. 17(주일)
설교자:노창영 목사
서론// 사도 바울은 고전 10:1-12를 통해 구약의 많은 사건들은 우리에게 거울을 삼아 살라고 주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며, 우상을 숭배하고, 모압 여인과 음행을 저지르며, 뱀에게 물리고, 원망하다 멸망을 당하는 사건들은 모두 다 저희들 같이 죄를 즐거워하지 말고 말세에 경계로 살라고 주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 거울이되는 말씀입니다. 사울 왕도 우리들에게 거울이 되는 인물입니다. 이는 좋은 면 뿐 아니라 나쁜 면에서도 그러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사무엘상 9장을 통해 사울의 초기 출현에 대해 설교하였습니다. 사울의 족보, 인물 됨됨이, 그에게 일어난 영적 연쇄반응(체인 리액션)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 그리고 겸손함에 대하여 말씀하였습니다. 오늘은 사울 왕에 대한 두 번째 설교로 삼상 10장과 11장에 기록한 내용을 가지고 사울이 왕이 되고 나서 상승곡선을 그린 2년 동안의 일들을 설교하려고 합니다.
I. 사울의 첫 즉위 2년간의 특색에 대하여:고난없는 성공과 상승곡선의 허구성
사울은 40세에 왕이 되어 초기 2년간 겸손으로 상승곡선을 걸어갔으나 이 후에 교만하게 되어 인생의 내리막 길을 걷게 됩니다. 사울과 같이 우리 인생에서도 올라가는 상승곡선이 있으며, 또한 내리막 길로 가는 하강곡선이 있습니다.
사울 왕이 걸어간 인생의 상승곡선은 너무 짧았습니다. 이는 그가 너무 속히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잠언의 처음 속히 잡은 산업은 복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은 옳습니다(잠언20:21). 갑작스러운 성공, 갑작스러운 재물의 축복, 갑작스러운 삶의 영화들은 빨리 얻은 대신 빨리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어려움없이 속히 잡은 것보다 긴 시간을 두고 얻은 것이 단단하고 견고합니다. 인생의 고난 중에 깨어지고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씩 영성과 삶의 경륜을 쌓아가는 것이 바른 인생인데 사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울은 고난, 어려움, 환난이 없이 유력한 아버지 기스(Kish) 밑에서 평탄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물론 자신이 속한 베냐민 지파 조상들의 범죄로 600명의 적은 숫자로 새롭게 시작된 역사의 영향으로(삿19-21장) 지파, 가문, 집안에 대한 열등감과 왜소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생애는 비교적 평탄한 삶이었습니다. 사울은 40세에 왕이 되어 지내다가 즉위 2년이 되면서부터 변질되어 점점 이상한 인물이 되어 갔습니다.
욥을 보시기 바랍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아들과 딸들이 죽고, 죽음, 양과 낙타, 소, 암나귀 같은 모든 재물과 종들이 노략당하거나 죽음을 당하게 되고, 몸에는 악창이 나고, 아내는 그를 저주하며, 친구와 친척들이 떠나가는 기가막힌 고난과 환난을 당하지만 결국에 하나님을 만나 회복되어 갑절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고난은 그를 정금같이 만들었습니다.
요셉을 보시기 바랍니다. 17세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죽음의 위기에 처하고, 그 후 형들의 인신매매로 애굽에 팔려갔고, 13년간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무고죄로 감옥의 죄수로 살다가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여 30세에 총리가 되어 국가적 흉년의 위기 때에 나라뿐 아니라 아버지와 형제들까지 구원하게 됩니다. 13년간의 기가막힌 고난이 그를 하나님의 일을 위한 준비 기간이 되었습니다.
모세를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인생은 세 시기로 나뉘어 볼 수 있습니다(행7장). 첫 시기 40년동안은 운명에서 건짐받아 애굽의 궁중의 왕자의 삶을 살면서 애굽의 모든 학술과 말과 일에 능한 자로 훈련받습니다. 두 번째 시기 40년간은 미디안에서 목자의 삶을 살았고, 그의 나이 80세에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습니다. 세 번째 40년간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지도자로 살게 됩니다. 모세가 애굽과 미디안 광야 80년의 삶은 광야의 40년간의 사역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의 훈련과 미디안에서의 무가치한 삶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지도자 사역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난과 죽을 고비, 깨어짐 없는 인생은 때로는 순탄하고 놀라운 상승곡선을 탈 때가 있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에 고난이 없는 삶의 성공들은 알맹이가 없이 날아다니는 겨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자기의 내면세계를 믿음과 고난과 경건과 훈련과 절제로 다져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Ⅱ. 서울의 기름부음과 하나님의 신의 임재에 대하여
사울이 왕이 되어 성공적인 일을 하게 되는 인생의 상승곡선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신의 임재와 두 번째는 겸손입니다.
A. 하나님의 신의 임재에 대하여
1.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음(삼상10:1)
사울은 사무엘에 의하여 기름부음(anointing)을 받고 이스라엘 기업의 지도자가 되는데(삼상10:1), 실제로 사울의 초창기 2년 동안 왕으로 인정받은 것은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누구이십니까? 그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혹은 보혜사와 기름 부으심으로 일컬어지는 분이십니다. 사울왕의 즉위 초기 2년 동안은 하나님의 신의 임재가 크게 임하였습니다. 사울의 물질적인 기름부음은 단순히 그의 직책을 위한 예전적이고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기름부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물리적인 기름부음이 있었다고 하나님의 신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공적 인정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음 받은 이를 선택하셨다는 약속입니다. 교회에서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들을 임직할 때 구약시대와 달리 머리에 안수하지만 그것은 단지 교회의 예식을 따르는 의식입니다. 예식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성령님께서 임하시는 것이 기름부음은 하나님의 신의 임재와 감동으로 들어가는 시작입니다. 사울에게 성령께서 임하신 것은 그에게 물리적인 기름을 부으신 다음의 일이었습니다. 본문은 사울 왕의 기름 부음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를 두 가지 사건에서 기록합니다.
2. 산에서 내려오는 선지자의 무리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함(삼상10:6,10)
사울이 사무엘을 통해 기름 부음을 받아 왕으로 선택되고 나서 벧엘을 지나 하나님의 산으로 갈 때 하나님의 선지자의 무리가 비파와 소고, 저 및 수금을 타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선지자의 무리들은 사울을 영접하였고 그 때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여 예언을 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결정적으로 왕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이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의 능력으로 대적을 물리친 것입니다.
3. 암몬 족속들이 쳐들어왔을 때 사울이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되어 나가 싸워 대승리를 거둠(삼상11:1-15)
사울이 왕이 되었으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00% 왕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을 통하여 기름부음을 받고 왕으로 선포까지 되었으나 진정한 왕이 되어 백성들에게 인정을 받게 된 것은 암몬과의 전쟁 이후였습니다. 이스라엘 지파 중 요단 동편에 거주하던 길르앗 야베스 족속이 암몬 족속의 침공을 받게 됩니다. 암몬 족속은 아이들을 불에 태워 그 냄새를 즐기는 그들의 민족 신인 몰록 신을 섬기는 족속으로 반인륜적인 행위를 하는 잔인한 족속이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족속을 침공한 암몬 족속 나하스 왕은 평화조약을 맺고 섬기겠다는 길르앗 야베스족속의 협상 제안을 거절하고 그들의 오른 눈을 빼야만 조약을 맺겠다고 합니다. 나하스는 협상이 안되는 강퍅한 사람이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길르앗 야베스 족속은 사울에게 지원요청을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게 되고 그는 거룩한 분노로 충만하게 됩니다. 사울은 소를 한 겨리 잡아 각을 떠서 열 두 지파에게 보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와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이와같이 소를 각을 뜬 것같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소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농업과 경제의 중요한 기반이요 재산 1호였습니다. 이 말은 공동체를 살리는 이 전쟁에 도우러 오지 않는 지파는 해를 당할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두려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니 33만명이 몰려와 대군을 조직하게 됩니다. 사울은 이 군사를 삼대로 나누어 새벽에 암몬 족속을 급습하여 더운 낮시간까지 쳐서 대승을 하게 됩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사울의 왕권이 견고케 되었고 사울을 반대한 사람들을 잠재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삼상11:12-15).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사울을 왕으로 삼고 화목제를 드려 모두 기뻐하게 됩니다.
B.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들
인격이신 성령님께서는 우리들 안에 임재하셔서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시고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구약시대 때 전쟁에 나아간 많은 사람들(여호수아, 기드온, 입다, 삼손 그리고 사울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신의 임재를 통해 전쟁에 승리하였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신이 임하셔서 입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예언의 말씀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과 다니엘은 그들의 왕들의 꿈을 하나님의 신에 감동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광야 생활 중 성막을 지었던 브살렐과 오홀리압도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감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이루어진 성전 재건도 학개나 스가랴 선지자가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아 백성을 격려하여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찬양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삽, 헤만, 여두둔 족속 280명의 다윗의 성가대도 하나님의 신에 충만하여 신령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바울이나 베드로도 성령님의 임재로 능력있는 복음 전도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C.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이 질서를 잡음(삼상10:25-27, 11:12-15)
잠언28:19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들이 방자히 행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지 않고,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고, 말씀의 권세가 바로 서 있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들은 사사시대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게 됩니다. 방자하게 제멋대로 삽니다. 자기가 신이 되고, 비윤리적, 비도덕적, 비영성적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이 설 때 비로소 교인들의 신앙과 영적 질서가 잡히고 국가가 바로 서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전쟁을 승리하게 만드시고 백성들을 하나되게 하셔서 질서를 잡아가십니다. 삼상10:23-27에 보면 사울을 왕으로 삼고 나서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들에게 설명하고 이를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 두고 백성들을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사울도 이 때 기브아의 자기 집으로 갑니다. 이 때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사람들, 곧 유력한 자들은 사울과 함께 갔어도 어떤 비류들은 사울을 비난하고 그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며 멸시하고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야베스를 도와 암몬에 대승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의 왕됨을 반대하던 이 비류들을 죽이자고 하지만 사울은 승리의 날에 누구도 죽이지 말라고 하면서 반대자들을 포용합니다. 하나님의 신의 감동은 비류, 불량자, 교만한 자, 원망하는 자를 잠재웁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임하실 때 하나가 되고 질서가 잡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사울이 암몬 족속과 싸우러 갈 때 소 한 겨리의 각을 떠서 온 지파에 보낸 사건을 다시 상고합시다. 삿19~21장에 보면 레위인의 첩을 윤간한 비류들을 감싼 베냐민 지파와 이스라엘 연합군이 1,2,3차 전쟁을 벌이는 내용이 기록됩니다. 이 일은 레위인이 자기 첩의 몸을 토막내어 열두지파에 보냄으로 시작됩니다. 사람의 범죄는 공동체를 흩어지게 하고, 분열시키고, 깨뜨리며 싸우고, 무너지게 합니다.
그러나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소를 각을 떠서 이를 각 지파에 보낸 것은 이스라엘을 하나로 뭉치게 만듭니다. 죄는 공동체를 무너뜨리지만 성령님께서는 공동체를 세우고 하나로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Ⅲ. 사울 왕의 최고의 강점에 대하여(삼하10:19-22)
삼상9:20-21에서 사울은 참으로 겸손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났을 때 그에게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고 소망하는 자, 지도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삼상9:20b)”고 말하자 사울은 자기를 겸비케하게 하고 대답합니다. 자신의 지파는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요, 자기 가족은 베냐민 지파 중 이스라엘 중 가장 미약하기 때문에 자신은 이 큰 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같은 자기 겸손의 사람 사울을 오히려 높여 ① 30인 식사초대자 중 사울을 수석에 앉게 하고, ② 최고의 제사 부위인 넓적다리 살을 그에게 먹게 하며, ③ 결국 그를 왕으로 기름을 붓습니다.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그 후에 사무엘은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을 견고케 하려고 객관적인 인증으로 제비뽑기를 하게 합니다. 먼저 각 지파별, 1,000명씩을 모아서 제비를 뽑아 그 중 베냐민 지파가 선택되었고, 그 중 마드리의 집안이 뽑혔고, 그 중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히게 됩니다. 그러나 사울을 찾으나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하나님께 그가 어디 있나이까 여쭙자 하나님께서는 “그가 행구(行具) 사이에 숨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삼상10:19-22).
제비뽑기는 이미 하나님의 사람을 선택하는 방법입니다. 제비뽑기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 분배를 할 때, 폭풍 가운데 배 안의 요나를 찾을 때, 열 두 제자 중 결원된 가롯유다 대신 맛디아를 뽑을 때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선택하는 구약의 방법입니다.
사울을 이미 기름부음을 받았으나 이같은 공적인 제비뽑기를 통해 그가 왕으로 선택된 것을 공적으로 확인하게 되었고 견고하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행구(行具, 짐을 싣는 수레)사이에 숨을 만큼 순수한 사울 왕의 초기의 겸손한 모습을 봅니다. 사울의 초기의 순수하고 겸손한 모습은 그의 최고의 강점(Strong Point)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겸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먼지(Dust)같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절룩발이 므비보셋은 다윗 왕 앞에 자신은 죽은 개(Dead Dog)라고 하였고, 다윗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상한 심령(Broken Spirit)이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자신을 적신(赤身, Naked, 벌거숭이)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고 하면서 극히 작은 자임을 고백합니다.
사울은 40세에 왕이 되어 2년 만에 교만하여져 겸손을 지키지 못하고 인생의 하락 곡선을 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교만입니다.
이솝우화에 보면 개구리 떼가 웅덩이에서 놀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멋진 백로가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개구리들은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개구리들 중에 머리좋은 개구리 한 마리가 백로를 보고 나를 데리고 날아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결국 그 부탁을 백로가 받아들였고 그 똑똑한 개구리의 아이디어로 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한쪽은 백로가 물고 다른 쪽은 개구리가 물게 됩니다. 마침내 개구리는 백로가 날자 자신도 하늘 높이 날게 됩니다. 땅에서 맛볼 수 없는 하늘의 황홀함을 맛보게 된 이 똑똑한 개구리를 보고 웅덩이의 개구리들이 누가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나는 생각을 했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날고 있던 개구리는 자신의 입으로 나무막대기를 물고 있었기 때문에 말하고 싶어도 못하다가 결국 입이 근질근질하여 “내가 생각했지”라고 입을 열었고 그만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 우솝우화는 교만함으로 멸망케 된 개구리의 교훈으로 우리들에게 지혜를 줍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입니다. 겸손한 자가 존귀하게 됩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신의 임재와 겸손으로 그의 왕위 초창기 2년간 상승곡선을 타고 위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교만으로 인하여 너무 짧은 시간에 인생의 내리막 길을 겪게 됩니다.
결론// 선 줄로 알거든 넘어질 줄 알고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겸손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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