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노창영 목사 -
룻기강해(Ⅸ): 기업을 무를 자
본문 말씀 : 룻기 4:1-10
2021. 7. 11 주일설교
제목: 룻기강해(Ⅸ):기업을 무를 자 본문: 룻기 4:1~10 설교자: 노창영목사
서론//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내리시는 은혜와 평강이 모든 개봉 가족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룻기 아홉 번째 강해시간입니다. 지난 번 설교시간에는 보아스가 룻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내용에 대하여 말씀했습니다. 룻의 청혼을 받아들인 보아스는 룻에게 조건부 약속을 했습니다. 기업 무를 자 1순위인 사람이 기업 무를 책임을 이행하지 않을 때에 결혼을 하겠다는 조건부 결혼약속이었습니다. 기업을 무르는 것은 친족이 대를 이어가는 일로서 가장 가까운 친족이 우선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엘리엘멕 집안의 가장 가까운 1순위 친족은 이름을 알 수 없는 기업 무를 자였습니다. 보아스는 2순위였습니다. 이 두 사람 외에는 기업 무를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늘은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로서 룻과의 결혼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대하여 본문 룻기 4:1-10의 말씀을 중심으로 설교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은혜주시기를 바랍니다.
Ⅰ. 먼저, 기업 무를 자의 정의와 책임을 살펴보겠습니다
A. 기업 무를 자의 정의
1. 언어적 정의
① 국어사전에 보면「무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샀던 물건을 도로 주고 돈을 되찾아오는 행위를 말합니다. 혹은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한 수 무르다」라고 하는데 이는 원위치로 돌려 놓는 것을 말합니다.
② 기업 무를 자의 히브리어의 정의는 고엘(גֹּאֵל)입니다. 영어로는 Redeemer(구속자)입니다. 고엘의 의미는 “속전을 주고 되찾는다”입니다. 어떤 형제나 친척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하나님께 받은 기업을 담보 잡히거나 팔거나 하면 그 기업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 하게 됩니다. 그 때 기업 무를 자인 가까운 친족이 와서 그 땅값을 대신 지불하고 소유를 되찾아 무른 뒤 원주인에게 되돌려 주게 됩니다. 이 기업 무를 자가 바로 고엘입니다.
2. 신학적 정의
기업 무를 자의 신학적 정의는 하나님께 받은 각 지파소속의 개인 소유인 기업(Inheritance, Possession)을 잃어버렸을 때 되찾아주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기업이란 하나님께서 각 지파에 속한 개인에게 주신 몫의 땅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진 사람들은 기업의 일부나 전부를 팔기도 했습니다. 이 때 그 기업을 회복시키려고 가까운 친족이 와서 대신 값을 지불하고 그 기업을 무르고 원주인에게 되돌려줬습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기업 무를 자입니다. 구약의 출애굽 사건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왕 바로의 손에서 구하여 내는 고엘의 사역, 즉 구속 사역이었습니다.
B. 기업 무를 자의 책임
기업 무를 자가 되려면 기본적인 2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①첫째는 최측근의 혈연관계여야 합니다. 죽은 사람의 가장 가까운 최근친족이어야 합니다. 먼 친족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업 무를 자에도 순위가 있었습니다. ②두 번째는 재정적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고엘은 팔아서 잃어버린 땅의 소유권을 값을 지불하여 되찾아 오는 사람입니다. 고엘된 자는 자신의 돈을 희생하여 땅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엘은 돈이 많은 유력한 자여야 했습니다.
또한 기업 무를 자가 되려면 다음의 4가지 책임을 다해야 했습니다. ①첫째는 핏값을 갚아 주어야 합니다. 고엘된 자는 가장 가까운 친족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을 때 그 사람을 대신하여 피의 보수자가 되어 살인자를 죽여 원수를 대신 갚아 주어야 했습니다(수20:5). ②둘째는 땅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기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가난하여 땅의 전부나 일부를 팔게 된 경우에 기업 무를 자인 고엘이 가서 빚으로 잃어버린 땅값을 지불하고 되찾아서 그 친족에게 되돌려주었습니다(레25:25-26). ③셋째는 죗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사람사이에 죄를 짓게 되고 이웃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이 때 그 죗값을 갚기 위하여 상대방에게 손상을 준 값과 더불어 5분의 1을 더 돌려 줘야 했습니다. 이때 그가 이 일을 감당할 돈이 없을 때 기업 무를 자인 가까운 친족이 대신 갚아주고 죄값을 지불했습니다(민5:6-8). ④넷째는 이름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어떤 집안의 남자가 죽었을 때 가장 가까운 형제나 친족이 그 사람의 대를 이어가기 위하여 죽은 자의 부인과 결혼하여 그 죽은 자의 이름으로 대를 이어가는 법도가 있었습니다(신25:5-10). 이때 고엘은 자녀를 낳아 죽은 자의 이름으로 대를 잇게 합니다. 자신의 이름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같은 자신의 이름값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만약 기업 무를 자가 이 일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신을 벗기고 얼굴에 침을 뱉고 수치를 주었습니다.
이 같은 4가지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이었습니다. 이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기업 무를 자는 핏값, 땅값, 죗값, 이름값을 완전히 지불하면서 죽은 자의 집안을 살려내야 했습니다.
Ⅱ. 둘째로, 본문에 나타난 보아스의 기업 무르는 과정을 상고하겠습니다(4:1-10)
A. 기업 무를 1순위자를 향한 보아스의 강력한 요청(4:1-6)
1. 보아스의 기업을 무르는 적극적인 과정
오늘의 본문에는 보아스가 기업 무를 1순위자를 넘어서 그 집안의 기업 무를 자가 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아스가 룻의 남편이 되고 기업 무를 자가 되려면 먼저 기업 무를 1순위자가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어느날 베들레헴 성읍의 성문에 올라가 앉습니다. 마침 그 때 기업 무를 1순위자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보아스는 그에게 성문위에 올라와 앉으라고 말하였고, 또한 베들레헴 성읍의 열 명의 장로들을 초청하여 그들을 증인으로 삼습니다. 보아스는 그들에게 엘리멜렉의 사후에 기업을 잃은 나오미의 집안사정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그리고 기업 무를 1순위자에게 기업을 무를 책임을 감당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내가 무르리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보아스는 난관에 봉착합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지혜를 가지고 기업 무를 1순위자에게 기업 무를 자가 되려면 희생해야 하는 재정적 손실과 이름의 손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기업 무를 1순위자는 자신에게 손해가 있을 것 같아서 기업을 무르지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기업 무를 1순위자가 기업 무를 권리를 포기함으로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고 기업 무를 자가 됩니다.
2. 두 사람(보아스와 기업 무를 1순위자)의 각기 다른 태도
우리는 본문에서 두 사람의 주인공을 봅니다. 하나는 보아스이고 또 하나는 기업 무를 1순위자입니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학과 사상, 삶의 태도는 정반대였습니다.
① 희생하는 사람 보아스(4:1-5)
보아스는 룻과의 약속을 이행합니다. 자신의 물질을 희생하여 나오미 집안의 빚을 대신 지불함으로 기업을 되돌려 주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이름을 희생함으로 룻과 결혼하여 죽은 자의 이름을 이어가도록 했습니다. 보아스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장모(나오미)를 봉양하고 룻과 결혼해서 사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자신의 이름도 사라집니다. 물질도 다 내어줌으로 재정적으로 손해를 봅니다. 그러나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다 합니다. 보아스는 섬김과 희생의 위대한 일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그 이름이 찬란하게 빛나는 성경속의 영웅이 됩니다. 그는 다윗임금의 증조할아버지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혈통의 조상이 됩니다.
② 손해 보기 싫어하는 아무개(기업 무를 1순위자)(4:6)
보아스 앞에는 기업 무를 1순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비멜렉집안의 최근친족으로 보아스보다 기업 무를 우선 순위자였습니다. 성경에 그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보아스는 그를 “아무여”라고 부릅니다(4:1). “아무개”라고 기록된 기업 무를 1순위자는 히브리어로 펠로니 알모니(פְּלֹנִי אַלְמֹנִי, Peloni Almoni)라고 합니다. 그 뜻은 “아무개”입니다. 이언 두기드(Iain M. Duguid)라는 강해자는 이 본문을 강해하면서 이 아무개는 확실한 부동산거래를 원했다고 말합니다. 이 아무개는 자신이 이 집안의 기업을 무르기 위하여 룻과 결혼해 나오미를 대강 섬기게 되면 그 집안의 땅이 자신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가 말한 희생과 책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기업 무를 자의 권리를 포기합니다. 만일 아무개가 룻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으면 이 기업은 죽은 자의 대를 이은 그 자녀의 것이 되고 죽은 자의 이름으로 대를 잇게 됩니다. 이 같은 이야기를 들은 아무개는 마음을 바꿉니다. 그는 보아스에게 “나는 나를 위하여 기업을 무르지 않겠노라(I can’t redeem it for myself)”고 말합니다. 그는 이 일이 자신에게 아무 이득이 없을 뿐더러 자기에게 돌아올 손해를 생각하면서 이기적인 결단을 내립니다. 결국 그는 다윗 왕가의 조상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혈통의 조상이 되는 영광스런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이처럼 이 두 사람의 미래는 극명하게 갈라지게 됩니다. 성경에서 그 사람은 이름도 없는 익명의 지시대명사인 펠로니 알모니(Peloni Almoni), 즉 「아무개」로 표현됩니다. 잊혀진 이름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기록될 만한 아름다운 결단을 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그 이름이 아무개로 남게 됩니다. 우리들의 이름은 하나님 앞에 기록되는 이름이 되어야 합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자기 정체성입니다. 「아무개」로 남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시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마을에 나사로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이 나사로는 큰 부자의 집 대문 앞에서 구걸하며 살았습니다. 심지어 거지 나사로는 온 몸에 헌데가 들어서 개들이 핥았습니다. 그는 병들고 굶주렸습니다. 결국 나사로는 죽게 되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주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반면에 사치를 부리고 살다가 죽게 된 부자는 음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부자는 음부가 너무 뜨거워 나사로의 손으로 자신의 혀를 서늘하게 해주길 원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경은 거지 나사로의 이름만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부자는 이름도 없는 익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냥 부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이야기는 비유가 아니라 팩트(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개」로 기록되시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보아스」라는 이름과 같이 하나님앞에 기록되는 영광스런 고유명사로 기억되시길 원하십니까? 보아스처럼 사랑과 희생으로 죽은 가문을 살려내는 빛나는 종으로 살아갈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살다가 「아무개」(펠모니 알모니)라는 가치 없고 지워진 사람이 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B. 신을 벗는 전례(4:7-10)
이스라엘에는 신발을 벗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 풍습은 어떤 물건을 무를 때(Redemption)나 토지를 매매할 때(Exchange of Land) 소유권이 이전되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파는 자가 신을 벗어서 새 소유주에게 넘겨주고 새 소유주는 신발을 받아서 신는 것입니다. 새로운 소유자는 땅을 사게 되면 땅을 판 사람의 신을 받아 그 신을 신고 새롭게 산 땅을 밟음으로 소유권을 확증하는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신을 벗어 주었습니다. 이는 소유권 이전의 공증 효과입니다. 보아스는 많은 장로와 백성들을 모인 곳에서 기업 무를 1순위자의 신을 벗게 하는 소유권 이전의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시골의 어느 장로님이 자신의 집에서 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교회가 부흥되니 예배당이 필요해서 자신의 몇 백평 땅을 교회에 헌납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돈을 모아 그 땅위에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나중에 그 장로님께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장로님은 교회에 땅을 헌납할 때 말로만 하였지 등기하는 절차를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장로님 사후에 그 자녀들이 장로님이 교회에 헌납한 땅에 대하여 소유권을 주장합니다. 믿음 없는 자녀들은 교회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이때 교회는 등기내용이 없어서 패소하게 됩니다. 결국 땅은 자녀들에게 돌아가고 건물만 교회의 것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법적인 절차는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소유권 공증의 확실한 기록들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가 127세에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사라의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가나안 헷 족속 지역의 막벨라 굴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 땅의 주인 에브론은 하나님의 방백 같은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그냥 주겠다고 하였지만 아브라함은 헷 족속이 듣는 앞에서 은 400개를 주고 그 곳을 매장지로 구입했습니다(창23:1-20). 그때부터 막벨라 굴은 아브라함 집안의 가족묘지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변하기 때문에 이 같은 증인들이 있는 공증의 절차가 필요합니다. 나중에 아브라함이 죽고 아들 이삭이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 받습니다. 이삭은 농사를 지었는데 100배의 소출을 얻었습니다. 소와 양도 번식하여 큰 떼를 이루었습니다. 게다가 그가 우물을 파는 곳마다 우물물이 터졌습니다. 그 지역의 왕인 아비멜렉은 그 땅은 우리 땅이라 하면서 이삭의 우물을 여러 차례 빼앗았습니다. 온유한 이삭은 싸우기보다 여러 차례 양보하면서 계속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우물하나 파기도 힘든 가나안 땅에서 이삭이 우물을 파는 곳마다 물이 터지게 됩니다. 이를 본 블레셋왕 아비멜렉이 이삭에게로 와서 상호불가침의 화친조약을 맺자고 했습니다. 이때 이삭과 아비멜렉이 맹세한 곳의 우물을 일컬어 맹세의 우물, 곧 브엘세바라고 칭합니다(창26:12-33). 이런 것이 그들의 공증 절차였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은 증인, 신 벗기, 돈, 돌쌓기 등으로 공증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지혜를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Ⅲ. 마지막으로, 보아스보다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상고하겠습니다
A. 보아스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물을 희생하여 엘리멜렉의 기업을 사서 그 집안에 되 돌려줍니다. 그리고 룻과 결혼하여 자신의 이름을 희생하여 그 집안의 죽은 자의 이름으로 대를 이어가게 합니다. 그는 자신의 물질과 이름을 희생했습니다. 그는 기업과 모든 것을 잃고 이삭줍기로 연명하는 나오미의 집안을 살려냅니다. 그는 나오미와 룻의 봉양자, 보호자, 공급자, 구속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단지 한 가족을 위한 고엘이었습니다. 보아스는 온 인류의 고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고편일 뿐입니다.
B. 예수 그리스도
보아스보다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구속하신 기업 무를 자, 고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아스처럼 한 가정을 위함이 아니라 온 인류의 기업 무를 자가 되십니다. 나오미와 룻처럼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을 떠나 삽니다. 나오미와 같이 실패한 쓴 인생입니다. 룻처럼 이삭을 줍는 바닥의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완벽한 기업 무를 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같은 죄인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자녀와 하늘의 기업의 상속자와 하늘의 시민이 되게 하십니다. 그는 우리의 영원한 기업 무를 자, 구속자가 되십니다(엡1:3-14).
결론// 함께 고백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기업 무를 자, 나의 구속자, 나의 보호자, 나의 공급자, 나의 고엘이 되심을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요약: 이이레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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