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노창영목사 -
사도 요한의 교사상(Ⅱ) : 수평적 차원에서
본문 말씀 : 요한일서4:7-11;2:15-17;3:4-8 요한이서 1:7-11 요한삼서 1:9-12
2021년 5월 23일(주일)
제목: 사도 요한의 교사상(Ⅱ):수평적 차원에서
본문: 요한일서 4:7-11;2:15-17;3:4-8 요한이서1:7-11 요한삼서1:9-12 설교자: 노창영목사
서론// 지난 주일에는 교회학교 교사주일을 맞아 사도 요한이 보여 주는 교사상을 수직적 차원에서 설교했습니다. 수직적 차원에서의 교사상은 생명의 말씀의 체험자, 하나님과 막힘이 없는 사귐의 사람, 성령의 기름부음이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사도 요한의 교사상을 수평적 인간관계의 차원에서 상고하려고 합니다.
Ⅰ. 먼저, 사도요한은 사랑의 교사상을 보여줍니다(요일4:7-11)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는 기독교 진리의 최고봉입니다. 사랑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집착이나 정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사랑이 함께 할 때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A.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1892-1983)의 이야기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했을 때 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하고 잡아갔습니다. 이때 시계공을 하고 있던 경건한 사람 카스퍼 텐 붐과 그의 딸 코리 텐 붐은 유대인들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기도 하고 음식을 제공함으로 많은 유대인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약 800명의 유대인들이 코리 텐 붐의 가정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독일군에게 발각이 되어 코리 텐 붐의 부모님과 사촌언니 벳시와 코리가 라벤스부르그의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습니다. 이 곳에서 이들은 아주 끔찍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수감자들은 추위, 더위, 오물, 냄새, 배고픔으로 시달렸고, 간수들의 행동에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꼈고 간수들은 여자들에게 강간까지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 수용소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사촌언니 벳시는 세상을 떠나고 간신히 코리 텐 붐만 살아남아 자유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코리 텐 붐은 전 세계를 다니며 수용소에서의 만행을 이야기하면서 그 곳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였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용서를 말하면서도 스스로는 독일인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독일교회에서 그녀를 초청했습니다. 그녀는 독일교회에 가서 수용소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하고 말씀을 은혜롭게 마치고 나서 성도들과 한 명씩 교회대문 앞에서 인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녀앞에 어느 키 큰 노신사가 서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코리는 깜짝 놀라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그 남자는 그녀의 사촌언니를 강간했고, 새벽부터 모든 여성수감자들을 나체로 세워 검색하는 등 심한 모멸감을 느끼게 했던 수용소의 바로 그 감독관이었습니다. 그녀의 눈앞에 서 있는 이 남자를 보는 순간 코리 텐 붐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고 속에서 미움의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그 순간 코리 텐 붐은 “하나님, 저는 그 어떤 사람도 용서할 수 있지만 이 사람만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때 위로부터 “나는 이 사람을 위해서도 십자가에서 죽었노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코리 텐 붐은 먼저 손을 내민 이 남자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사랑이 코리 텐 붐의 마음을 사로잡아 속에 있던 모든 원한과 미움의 응어리들이 다 내려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코리 텐 붐은 이 때부터 마음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절대로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육신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지배할 때 우리는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B. 요한일서 4:7-11의 말씀
원래 사도 요한은 별명이 보아너게, 즉 우뢰의 사람입니다. 그는 원래 급하고 폭발적인 성격을 지닌 나쁜 인성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후로 성령충만을 받아 우뢰의 사람 요한이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 요한일·이·삼서와 요한계시록을 보면 모든 내용의 핵심적인 키워드가 사랑이며,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사랑이 넉넉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요일4:10-11). 하나님께서 사랑을 먼저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요한복음13:34-35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리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하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서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라고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부모와 가르치는 교사들은 이와 같은 사랑의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C. 사랑의 교사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1899) 이야기
오래 전 미국 시카고의 작은 동네에 주일학교 학생 한 명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이 다니는 교회는 집에서 몇 블록 떨어져 있었고, 자신의 교회를 가는 중간에 여러 개의 다른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비가 많이 오는 어느 주일 아침에 몇 교회를 지나서 자기 교회까지 계속 달렸습니다. 이 소년이 교회를 가는 길에 어떤 교회 선생님이 나와 있다가 그 소년을 보고 “너 교회 가는 길이냐? 네 교회가 어디에 있냐? 오늘은 비가 많이 오니까 우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소년은 바가 와도 자신의 교회까지 가야 한다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그 교회 선생님이 그 이유를 묻자 소년은 “그 교회에는 나를 사랑하는 선생님이 계시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을 받으면 어린아이들도 충성을 다합니다. 사랑받은 사람은 보답을 합니다. 사랑받은 사람은 끝까지 그 사랑을 기억합니다. 이 소년을 사랑했던 그 선생님은 바로 드와이트 무디였습니다. 무디는 1800년대에 미국에서 큰 부흥을 일으켰던 부흥사입니다. 무디의 고향은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시골이었습니다. 그가 4살에 아버지가 죽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어렵게 살다가 17살에 보스톤에 있는 외삼촌의 구둣가게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무디는 영적 갈증을 느끼고 근처의 주일학교에 출석을 했습니다. 에드워드 킴볼이라는 선생님이 거의 문맹에 가까운 무디에게 관심을 갖고 성경을 가르쳤고, 어느 날 복음을 증거했을 때 무디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이 선생님의 사랑으로 무디는 달라졌습니다. 무디는 보스톤에 간지 1년 만인 18세에 개종했고, 2년 후인 20세에 시카고로 옮겨 구두일을 계속 했습니다. 무디는 주일학교 교사를 통해 자신이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근처 교회의 주일학교 교장을 찾아가 교사지원을 했으나 교장은 자신의 교회에는 학생들도 제한되어 있고 교사들도 넉넉하니 무디에게 교사직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교장은 무디가 직접 아이들을 전도해서 교회로 데리고 와서 한 반을 만들면 그 아이들의 교사를 할 수 있다고 교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무디는 이 말에 힘을 얻어 거리에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며 전도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아이들을 모아 주일학교 한 반을 만들고 그 반의 교사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무디가 만든 반의 아이들 수가 주일학교 전체 아이들 수보다 더 많아 졌습니다. 무디가 1억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부흥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에드워드 킴볼이란 교사 한 사람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에드워드 킴볼 선생님의 사랑을 받은 무디는 그 사랑을 가지고 주일학교를 부흥시켜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교사나 섬기는 자는 사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처럼 사랑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Ⅱ. 사도요한은 대적을 정확히 분별하여 가르치는 교사상을 보여줍니다(요일2:15-17; 3:4-8, 요이1:7-11)
우리는 전에는 본래 마귀의 종이요 어둠속에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들에게는 대적들이 생겨납니다. 빛의 자녀가 된 신앙인들은 어둠의 세력의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들에게 대적을 조심하라고 명령하면서 3가지 대적에 대하여 주의할 것을 요구합니다.
A. 먼저, 세상입니다(요일2:15-17)
하나님의 사람 사도 요한은 먼저 우리의 적으로 세상을 지목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많은 문화적인 환경과 요인을 가지고 우리를 미혹하여 사망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흔들림이 없는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하는데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의 적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 안에 있는 정욕을 3가지 방법으로 격동하고 미혹합니다. 첫째, 육신의 정욕입니다. 세상은 우리 안의 욕망과 욕심을 충동질하여 죄를 짓도록 만듭니다. 돈이나 쾌락, 세상의 즐거움의 욕망들을 자극합니다. 마치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돌을 떡이 되게 하라고 말한 것과 같은 유혹입니다. 둘째, 안목의 정욕입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다양한 볼거리들과 가시적인 욕망들, 이 땅에서 갖고 싶은 권세, 소유의 욕망이 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온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했던 것과 같은 유혹입니다. 셋째, 이생의 자랑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데리고 성전꼭대기에 세우고 뛰어 내리라고 하면서 천사가 손으로 받들어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들 안에는 세상에서 자기를 나타내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영웅심리와 명예심, 자랑의 욕망이 있습니다. 마귀는 이것을 자극합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물질, 문화적인 유혹과 쾌락, 성의 욕망, 권력에 대한 욕망이나 명예, 영웅심리 등 수 많은 유혹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C.S. 루이스(C.S. Lewis)가 쓴 「나니아 연대기」라는 책에 보면 「사자, 마녀, 옷장이야기」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4명의 아이들이 시골의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갔다가 옷장에 들어가면서 나니아라는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이 아이들은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입니다. 이 세계에는 어둠의 세력을 지배하는 겨울 마녀가 있는데, 이 겨울 마녀가 4명의 아이들 중 셋째인 에드먼드를 미혹합니다. 겨울 마녀는 아주 맛있는 최고급 터키식 젤리를 에드먼드에게 주면서 너의 형제들을 데리고 오면 너를 왕으로 삼고, 그들을 너의 신하로 만들고, 젤리도 더 많이 주겠다고 미혹합니다. 에드먼드는 젤리를 먹다보니 중독이 되었고 마녀는 에드먼드를 자신의 종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런 것이 세상이 주는 우리를 향한 유혹의 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종들은 세상을 주의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B. 둘째, 죄와 마귀입니다(요일3:4-8)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둠의 세상의 주관자인 최고의 대왕은 마귀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하늘에서 쫓겨 난 천사장입니다. 많은 타락한 천사들을 데리고 있는 악의 영들의 두목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죄를 짓도록 미혹하여 우리를 자신의 종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했다고 말씀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최대의 적입니다. 이것을 알고 경고하는 것이 교사들의 역할입니다. 마귀는 죄를 짓는 자를 자신의 종으로 만들어 죽음으로 끌고 갑니다. 그리고 이 죽음을 담보로 우리 영혼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권세를 가지고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힘입니다.
사무엘상 30장에 보면 다윗이 모든 가족을 시글락성에 두고 전쟁에 나간 사이에 아말렉 족속들이 시글락성에 쳐들어와서 물건들을 탈취하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의 가족들을 잡아가는 내용이 기록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적들을 쫓아가면 잡을 수 있는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는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에 다윗은 600명의 군사 중에 400명의 군사만 데리고 아말렉을 찾으러 나갔습니다. 하지만 아말렉 사람들은 치고 빠지는데 선수라서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들판에 애굽 소년 한 명이 거의 빈사 상태로 누워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소년에게 물과 떡과 무화과와 포도송이를 먹여서 넌 누구소속이며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소년은 자신은 애굽 소년이나 아말렉 사람들에게 잡혀 종이 되어 전쟁터에 끌려 다녔는데 병이 들자 아말렉 주인이 자신을 들판에 던져 버리고 갔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그 소년에게 아말렉의 행방을 물었고 소년은 아말렉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 자신의 생명을 보존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다윗은 이 소년의 요구를 들어 주기로 약속하고 그를 안내자로 삼아 아말렉 사람들을 쫓았습니다. 다윗은 아말렉 사람들을 급습하여 그들을 전멸시켰고 전리품과 가족들을 데리고 돌아 오게 됩니다. 아말렉 군대에 속해 있던 종인 애굽소년의 주인은 아말렉 사람이었습니다. 이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아말렉인 주인은 소년을 종으로 열심히 부려 먹다가 병이 들자 던져 버린 것입니다.
마귀는 이 아말렉 주인처럼 악한 주인입니다. 우리를 미혹하여 자신의 종이 되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용하다가 쓸모없어지면 그냥 던져 버립니다. 사망으로 이끕니다. 이것이 마귀의 장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죄를 지을 때 마귀의 종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주인을 바꿔야 합니다. 옛 주인과의 관계를 결별하고 새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소망과 승리로 가득 차게 됩니다.
C. 셋째, 이단입니다(요이1:7-11)
교사나 하나님의 종들은 이단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스스로 조심하며 학생들과 자녀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훈보다 더 지나친 사람들, 더 가르치거나 덜 가르치는 사람들인 거짓 선지자와 거짓 교사들이 적그리스도요 이단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제하거나 덧붙이는 자들 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들을 집에 들이지 말며 인사도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미혹에 넘어가 한 순간에 믿음이 무너져서 그들에게 끌려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단을 경계하고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단에 대하여 너그럽고 인심 좋게 마음을 주시면 안 됩니다. 기독교신앙은 착한 인간의 성품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관계에서 인심 후한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후하시면 안됩니다. 물론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과 평화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맞습니다. 그러나 너그럽고 인심 후한 성품 때문에 이단을 집에 들이고 인사하고 사귀면 이단에 걸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 요한은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교사된 자기 자신이 많은 자녀들에게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마귀를 대적하라, 이단을 멀리하라고 경고합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으로 대적을 정확히 분별하여 나아가는 교사와 하나님의 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Ⅲ. 사도 요한은 인간의 심성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교사상을 보여줍니다(요삼1:9-12)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다혈질이며, 실패도 많이 했고, 신앙의 굴곡도 많은 사람인 것을 아시면서도 제자로 선택하여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인내와 사랑으로 훈련하셨습니다. 우뢰의 사람 사도 요한은 형 야고보와 함께 성격이 급하고 감정을 스스로 조절 못하는 분노의 사람으로 살아 갔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고 사랑의 사람으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진중하며 경건한 종인 것과 가롯유다가 자신을 팔아 버릴 자라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심성을 꿰뚫고 계셨습니다. 그들을 개인적으로 아시고 가르치셨고 훈련하셨습니다.
사도 바울 주변에도 많은 동역자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제자는 중간에 바울을 떠나기도 했고, 어떤 제자는 그를 대적하기도 했고, 다른 제자는 배교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개인적으로 알았고 인내로 가르쳤습니다. 사도 요한도 이와 같은 많은 제자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3사람을 지목합니다. 이들의 실명이 요한삼서에 기록됩니다.
A. 가이오입니다(1절)
사랑 많은 주님의 종 가이오는 진리가운데 행하면서 나그네 접대를 잘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가이오를 축복했고 보고 싶어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장로 가이오가 어떤 심성의 사람인가를 알았고 그를 목양했습니다.
B. 디오드레베입니다(9-11절)
디오드레베는 으뜸 되기를 좋아 했습니다. 그는 사도 요한에게 망령되이 폄하하는 말로 대적하였습니다. 그는 나그네를 접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나그네를 접대하는 사람을 교회에서 쫓아 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 많은 사도 요한은 내가 가면 디오드레베가 행한 일을 잊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사도 요한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디오드레베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 이상의 악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디오드레베의 악한 심성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C. 데메드리오입니다(12절)
데메드리오는 많은 사람들과 진리에 증거가 있었던 검증된 인물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기 주변의 인물들에 대해 정확한 판단력과 분별력을 가지고 접근했습니다. 그는 사랑할 자와 주의할 자가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교사와 부모와 목양자들은 양떼 하나하나를 잘 알아야 합니다. 양들의 성향과 장점과 단점, 삶의 배경 등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지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동물을 키워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모든 동물들은 모양새가 다 똑같아 보여도 성격과 행동습성이 다 다릅니다. 소나 양이나 돼지나 닭이 식탁에 고기로 올라오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 이 동물들이 다 똑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이들을 키워보면 각자 다른 형태의 동물의 혼이 있습니다. 각자의 습성대로 따라갑니다. 성격도 다릅니다. 이렇게 동물도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다른데 사람은 얼마나 더 다른 모습을 하고 있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가이오와 디오드레베와 데메드리오에 대하여 정확한 판단력을 가지고 그들을 가르치고 지도했습니다. 사도 요한과 같이 영혼의 심성을 꿰뚫고 이해하고 사역할 때 열매 맺는 사역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사도 요한은 우리들에게 수평적인 인간관계 속에서의 교사상을 가르칩니다. 사랑의 사람이 되고, 대적을 분별하고, 인간의 심성을 알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양떼를 잘 목양하고 섬기고 가르치시는 교사와 부모와 목양자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요약: 김기희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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