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오늘의 만나(가정예배)
11월 25일 찬송/ 393장(새 350장) 본문/전도서4:1-6(949쪽) 제목:말씀 속에 답이 있다
‘학대’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모든 권리나 이익을 부당한 방법을 통해 전적으로 무시하고 침해하는 악한 행위를 일컫습니다. 학대받는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위로나 눈물씻김을 받지 못하는 해 아래 인생의 허무함에 대한 전도자의 고백입니다. ‘산 자’나 ‘죽은 자’ ‘출생되지 않은 자’ 오히려 해방되고 악을 보지 않는 것이 나을 만큼 부조리한 헛된 인생이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입니다. 성경은 이런 모순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제시합니다. 오른빰을 치면 왼쪽 뺨을 들이대어라! 즉 또 다른 모순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얼마나 큰 모순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또한 학대받고 어려움을 당하며 위로자가 없어 탄식 할 때 가까이 하실 ‘위로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말씀으로 모순된 세상을 이겨나가실 뿐 아니라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11월 26일 찬송/ 97장(새 97장) 본문/전도서4:7-16(950쪽) 제목:연합함의 능력
8절로 한 사나이의 독백 속에 현대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삶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희생한 채 고역을 치르며 이미 얻은 부를 만족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이 죽고 난 후에 그 축적된 부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음을 알면서도 점점 더 큰 부를 쌓기위해 달려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 사람의 문제 중 하나는 ‘아들과 형제’로 상징되는 인간관계가 부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신과 재산을 창출해낼 수 있는 세계 속에 갇혀서 ‘고독’과 ‘허무’ 속에서 홀로 애쓰는 가련한 일벌레로 사는 삶은 흡사 현대인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삶을 좋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여기에 돕는 배필을 더하신 것은 홀로 사는 삶이 아니라 함께하는 삶을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형제의 연합하며 동거함을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연합하며 협력할 때, 먼저 힘을 얻어 낙심치 않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의 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사단과의 전투에서 능히 이길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가족과 동료들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깨닫기 바랍니다.
11월 27일 찬송/ 86장(새86장) 본문/전도서5:1-9(950쪽) 제목:제물보다 믿음의 제사드리기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 제물드리는 것보다 먼저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발을 삼가고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에 합당한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것을 만드셨고 그 만드신 것을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알고 믿어 하나님께 온전히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와 가까이 계시고 친근한 분으로 이야기하다보니 그 분을 가벼운 분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 죄에 대해 그저 웃어넘기는 분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행동의 원인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성령 충만을 얻고 합당한 예배를 드리시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11월 28일 찬송/ 202장(새268장) 본문/전도서5:10-20(951쪽) 제목:그리스도인과 재물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 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폐단’이란 사전적 의미로 ‘어떤 일이나 행동에서 나타나는 옳지 못한 경향이나 해로운 현상’을 가리킵니다. 어떤 좋지 못한 해로운 현상이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을 나타냅니다. 솔로몬은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을 이 세상에 존재하는 큰 폐단이라고 지적합니다. 재물이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측면이 강조된 것은 재물이나 물질의 엄청난 위력 때문입니다. 재물은 하나님의 전능함을 흉내냅니다. 마치 신적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우리의 전심을 드리는 것인데, 물질도 그것을 섬기는 자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일찍이 간파한 다윗은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치심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늘어나는 재물은 물론 주어진 재물에 감사할 줄 알고 재물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음을 놓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11월 29일 찬송/ 219장(540새장) 본문/전도서6:1-12(952쪽) 제목:만족한 삶의 비결
6절로 “저가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라고 말씀합니다. ‘천년의 갑절’이란 인간으로서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기간을 의미합니다. 성경을 보아도 아담(930세),셋 (912세), 에노스(905세),므두셀라(969세) 정도가 그나마 이에 견줄 만한 삶을 살았을 뿐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사람의 평균 연령이 100세라 하더라도 거의 10배에 가까운 시간을 살았던 이들이 오늘날 우리보다 10배나 행복한 삶,낙을 누리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비록 그에 갑절이나 되는 삶을 살았다고 해도 그에 상응하는 만족된 삶을 살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이치로 낙태된 자와 우리 자신의 삶을 비교해 볼 때 어떻겠습니까? 과연 우리는 그보다 넘치는 만족을 누리고 낙을 누리는 삶을 살았으며 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행복하고 만족된 삶이란 길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생에서 참된 만족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분명하고도 확고한 말씀에서 해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후 3:5).
11월 30일 찬송/ 342장(새543장) 본문/전도서7:1-12(952쪽) 제목:삶의 원동력
“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슬픔’ 이란 의미로 사용된 ‘카아쓰’는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임신치 못하는 여인의 고통스런 심경(삼상 1:6,16)이나 어리석은 아이에 대한 부모의 안타까운 심경(잠 17:25), 다투는 배우자에 대한 근심(잠 21:19) 등을 나타냅니다. 즉 고통에 대한 비참한 심경에 뜻하는데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슬픔과 대조되는 ‘세호크’, 즉 ‘웃음’ 은 진리를 깨닫고 행함으로 오는 고상한 즐거움이 아니라 세상적 기쁨으로 6절의 어리석은 자의 웃음과 같은 것입니다. 깊이없는 가벼운 삶보다 고통스러우나 인생의 참 깊이있는 삶이 낫다고 합니다. 즉 슬픔을 아는 자만이 진정한 기쁨을 알 수 있으며 고민하는 자만이 참으로 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이 더 나은 삶을 살게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우리가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을 때 따르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회피하지 않고 그 고난에 참여할 때 주님의 영광으로 인한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작성: 방선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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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 | 3월 둘째주(3월10일-3월15일) 금주의가정예배 | 이동철 | 2025-03-04 | 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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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 | 12월 셋째주(12월16일-12월21일) | 방선영 | 2024-12-12 | 57 | |
842 | 12월 둘째주(12월09일-12월14일) | 방선영 | 2024-12-08 | 60 | |
841 | 12월 첫째주(12월02일-12월07일) | 방선영 | 2024-11-29 | 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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